"수입산 재료 공개하면 손님 줄까 걱정" 업주들 '나 몰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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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일대.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영업을 하고 있지만 원산지표시제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 음식점은 많지 않았다. [강태우 기자]

원산지표시제는 농산물 시장 개방과 함께 지난 1991년 7월 1일 도입됐다. 올해로 벌써 시행 20년이 넘었지만 농산물 품목이 늘어나고 표기방법에 대한 자세한 규정을 모르는 업주들이 많아 여전히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보완의 필요성도 제기돼 왔다. 지난해 6월 음식점 원산지표시제가 일부 변경됐지만 아직까지 변경된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1 13일 오후 6시 30분경. 천안시 봉명동의 한 음식점에는 한쪽 벽면에 메뉴판이 부착돼 있었다. 다양한 색상의 종이로 만든 10여 가지의 별도 메뉴도 예쁘게 꾸며져 있었지만 원산지 표시는 돼 있지 않았다. 이 음식점에는 인근 음식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쌀과 김치의 원산지 표시마저 눈에 띄지 않았다.

#2 다양한 메뉴를 자랑하는 쌍용동의 한 김밥전문점과 인근 지역 식당 역시 김치볶음밥, 제육볶음, 갈치조림, 낙지볶음, 수육, 소머리국밥 등 갖가지 음식명과 가격이 적힌 메뉴판을 부착하고 영업을 하고 있었지만 정작 원산지 표시는 전혀 표기돼 있지 않았다. 또 일부 음식점은 원산지 표시를 했지만 규정에 맞지 않는 구색 갖추기용 표시에 불과했다.

음식점 원산지표시제가 확대 시행된 지 7개월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지역 음식점 업주들의 참여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등 관계기관의 지속적인 홍보와 단속에도 불구하고 업주들의 의식 개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원산지표시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남지원과 천안사무소와 한국소비생활연구원 천안아산지부 등을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음식점 원산지 표시 대상 품목을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쌀, 배추김치 등 12개 품목에서 염소고기, 명태, 고등어, 갈치 등을 추가해 16개 품목으로 확대했다. 또 배추김치의 고춧가루와 배달용 돼지고기 역시 원산지 표시를 적용하도록 변경해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음식점은 영업 면적에 상관없이 음식명과 가격이 기재된 메뉴판과 게시판의 바로 옆이나 밑에 반드시 원산지 표시를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원산지를 알리는 글자 크기도 음식명 글자 크기와 같거나 그 이상으로 표시토록 해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표기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 내 대부분 음식점들이 원산지표시제 확대 및 강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실제 지난해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남지원이 음식점 원산지표시제 위반으로 적발한 건수는 천안 44건(형사처분 25건, 미표시 19건)을 비롯해 대전, 충남, 세종에서 총 427건에 불과했다. 이는 원산지표시제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음식점 수보다 턱없이 부족한 단속 실적이다.

천안시 성정동의 한 음식점 업주는 “원산지표시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확대 시행된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며 “원산지를 제대로 표시하면 수입 재료 등을 공개해야 하는데 가뜩이나 어려운데 손님이 더 줄어들까 걱정되는 마음에 원산지 표시를 미루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음식점 업주는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만 표시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어떤 품목이 대상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음식점 업주들이 원산지표시제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단속이나 계도활동을 진행하다 보니 단속요원 등과 업주간 마찰도 끊이지 않고 있다. 손순란 한국소비생활연구원 천안아산지부 대표는 “단속이나 계도활동을 하다 보면 일부 업주들이 흥분해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며 “이는 업주들이 원산지표시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단속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손 대표는 이어 “적은 인력으로 모든 음식점을 일일이 확인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원산지표시제에 대해 거부감이 있는 업주들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다”며 “연중 몇 번이라도 음식점 업주들을 한데 모아 제대로 된 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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