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로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극적 타결에 얼떨떨>
남북한 결의안 간의 극적인 타협안이 나오자 얼떨떨한 것은 여러 가지 수정안을 준비했던 나라대표들. 인도는 이미 문서까지 인쇄하여 회원국들간에 이를 돌리다가 타협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이 있자, 아예 문서자체를 숨겨 버렸다고.
「스웨덴」쪽에서도 성사된 남북한 타협안과 비슷한 수정안을 제출하였던 것을 취소해버렸으며 「튀니지」도 이미 정치위원회에 제출했던 수정안을 회의록에 남긴다는 조건을 붙여 이를 철회했다.
그러나 「유엔」총회가 있을 때마다 약방의 감초 격으로 나서는 명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바루디」대표는 『우리와 같은 약소국을 젖혀놓고 이런 식으로 막후에서 어물쩍 해버리기냐』면서 장장 40분 동안이나 호통을 쳐 이 때문에 타협안의 통과가 예정보다 지연됐다. 그는 강대국 정치는 지난날에는 『지진정치』와 같은 불가항력의 것이었지만 이제는 어림도 없다고 「테이블」을 두드리며 『열변』을 토했다.
그는 또 남북한 대표들에 대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참석하고 있는데 한반도의 분단에 작용한 강대국영향을 잊었을까봐 자기가 마련한 수정안에 외세의 간섭을 배제해야 된다는 귀절을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난 숫자는 잘 몰라>
그러나 「바루디」의 연설은 대부분 농담조여서 연설도중 회의장에는 여러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이제 쓸모도 없어진 자기수정안을 변호하면서 『누가 이것을 싫다고 하겠는가』라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으며 연설도중 영국대표「제임슨」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 저기 내 친구「제임슨」이 보이는군. 저 사람 말 잘하고 설득력 있고… 나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라고도 하고 또 『한국에는 미군이 2천명인가 4천명인가?』라면서 회원국들에 묻다가 아무 대답이 없자 『난 숫자는 잘 몰라. 하지만 그 군대에서 「유엔」이 깃발을 내리고 미국기를 올려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도 결국 자기 수정안을 철회, 남북한결의안의 합의성명은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이다.

<하오 회의 텅텅비고>
타협안이 통과된 21일은 미국의 추수감사절 전날인데다가 한국문제가 타협으로 끝나버려 하오회담은 절반이상 좌석이 빈 가운데 속개되었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문제토의에 참가하기 위해 연설을 신청한 대표중 대부분이 취소하고 9개국 대표만이 김빠진 연설을 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이종목 과 한국의 박동진 대사가 타협성명을 확인하는 연설을 했다.
박 대사는 이 자리에서 『북한 형제들』이라는 말로 북한대표들을 지칭하면서 『조속한 시일 안에 남북대화를 조건 없이 재개하도록』촉구했다.
박대사의 수락 연설을 끝으로 「보르쉬」의장은 『한국문제의 토론은 이로써 종결되었다』고 선언했다.

<박 대사 금도에 호평>
21일 상오 「유엔」정치위에서 동서 양 진영의 한국문제 타협안이 채택되기 직전 박동진「유엔」대사는 「유엔」제1위원회 회장인 제4회의실 앞「로비」에서 멋적게 서있는 북한 「업저버」단장 권민준에게 『평양에서 오신 권 선생이시죠』라고 악수를 청했다.
권이 『예』하면서 손을 맞잡은 채 계속 서먹해지자 박 대사는 『우리 같은 민족으로서 다같이 「뉴요크」에 상주하게되어 반갑습니다』라고 말했다.
무표정하게 맞잡았던 손을 말없이 놓고 자리를 뜨는 권을 옆에서 지켜본 한 서방측 외교관은 『역시 한국의 박 대사가 큰형다운 금도를 보여줬다』고 호평 한마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