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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현대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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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수석논설위원

지난주 굵직한 뉴스라면 두 가지다. 우선 한국사 교과서 진통이다. 곤두박질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도 큰 뉴스다. 새누리당은 “한국사는 국정교과서로 돌아가야 한다”며 야단이고, ‘삼성전자 없는 한국’에 대한 걱정도 대단하다. 이쯤에서 옛날 신문기사를 더듬어 가보자.

 삼성전자는 난산 끝에 태어났다. 다음은 1969년 6월 26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59개 전자업체들이 삼성재벌의 일본 산요전기와 합작이 부당하다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삼성전자를 ‘매판 조립산업’이라 규정하고, ‘수출 85%’는 허황된 구호라 반발했다. 나머지 15%가 국내시장에 풀리면 전부 도산한다고 주장했다.” ‘재벌’과 ‘매판’, ‘도산’이란 표현이 도드라진다.

 당시 김정렴 상공부 장관은 골치가 아팠다. 그는 그해 7월 7일 “전량 수출조건이라야 삼성전자 합작설립을 승인할 생각”이라고 후퇴했다. “일본 전자자본이 합작으로 들어오면 내쇼날이나 소니의 한국 침투를 막을 수 없다”는 기존 업계의 경고를 의식한 것이다. 긴 소모전 끝에 전량 수출 조건으로 삼성전자 합작 설립을 인가했다(동아일보 9월 1일자).

 삼성전자는 간신히 일어섰지만 연일 비틀거렸다. 일본 자본은 필요하지만 일본 제품은 필요 없다는 정책은 금방 한계를 드러냈다. 당초 1900만 달러로 계획된 합작 규모는 300만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일본 측이 ‘전량수출’이란 조건을 꺼렸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생존을 위해 꼼수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합병을 통한 국내 우회판매가 그것이다. 다음은 그해 매일경제신문 12월 29일자 보도다. “삼성전자가 오리온전자와 임가공 계약을 통해 국내 판매를 시도하고 있다. 오리온 전자를 흡수하면 일부 국내 시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판단은 박정희 대통령이 내렸다. 이듬해 8월 24일의 제8차 수출진흥확대회의. 박 대통령은 “전자제품의 수출이 왜 이렇게 부진한가”라며 이낙선 상공부 장관에게 따졌다. 70년 9월 1일자 매일경제신문의 기사는 이렇다. “정부가 정책 선회를 감행했다. 합작투자에 일정량의 내수판매를 허용한 것이다…금년 전자제품 수출목표가 8000만 달러였으나 상반기 현재 2272만 달러로 부진하다…이는 국내업체들이 국제시세에 비해 근 3배에 달하는 제품 가격에서 오는 이익을 탐내어 수출에 힘쓰지 않는 게 주원인이다….” 박 대통령의 결단으로 5년 뒤 전자제품 수출은 7배 이상 뜀박질한 5억44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했을까. 오히려 ‘재벌’ ‘외국자본’ ‘경쟁’에 대한 거부감은 더 짙어가는 느낌이다. 과연 오늘 삼성전자를 세우려 했다면 가능했을까. 국회 청문회에 불려나가 얻어터졌을지 모른다. 기업의 증손자 회사에 지분비율을 좀 깎아주자는 외국인투자촉진법마저 “특정 재벌의 로비에 대통령과 국회가 굴복했다”고 몰아세우는 세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생산품의 85%를 수출했다. 최초의 약속을 44년 만에 지킨 것이다. 여기까지 오기에는 이병철 회장의 집념과 박정희 대통령의 과감한 규제완화가 밑거름이 됐다. 경쟁과 개방을 계속 외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기득권 집단은 여전히 국제시세의 3배나 되는 독과점 이윤을 누렸을지 모른다. 소비자는 희생되고 경제는 정체됐을 게 분명하다. 바로 이런 게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칠 생생한 근현대사가 아닐까 싶다.

 E H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 했다. 아널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를 강조했다. 그렇다면 옛 신문기사를 보며 우리는 지금 누가 더 역사 발전에 복무하는지 판단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를 외치는 코레일 노조와 의사집단이 개혁진영일까. 아니면 “공공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여러 규제를 풀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도전하는 쪽일까. 근현대 교과서를 바로세우려면 보수·수구 vs 진보·개혁이라는 낡은 잣대부터 바로잡아야 할 듯싶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