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의지 있지만 올핸 때 아니다”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 … “박 대통령의 반대는 자기 부정” 유인태 민주당 의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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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10면

최정동 기자

-‘1987년 헌법’이 만들어진 지 27년이 됐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유기준= “박근혜 대통령도 개헌의 필요성 자체엔 공감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취임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개헌에 들어가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게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물론 국민의 공통된 심정일 것이다. 어떻게든 성장동력을 살려내야 하는 경제에다 장성택 처형과 핵무기 개발 등 긴박한 북한 정세, 중국의 부상 속에 급변하고 있는 동북아 지형 등을 고려하면 개헌을 거론하기엔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개헌 의지는 있다고 보나) 당연하다. 그러나 뜬금없이 지금 개헌을 논의하는 건 엄동설한에 팥빙수 찾는 격이다.”
▶유인태= “과거 군사독재 시절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다 87년 국민의 열망으로 직선제 개헌을 이뤄 냈다. 단기간에 개헌을 쟁취하다 보니 국민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27년이 지났다. 그러다 보니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됐다. 시대가 변한 만큼 국민 의식도 달라졌고, 그에 맞춰 헌법과 체제도 진화해야 한다.”

박 대통령 개헌 논의 유보 … 여야 공방전 지상 중계

-개헌한다면 시점은 언제가 적절한가.
▶유기준= “개헌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헌을 하려면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 거기서 개헌안이 통과되면 좋지만 만에 하나 부결되면 바로 대통령 권력에 레임덕이 온다. 그러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회에서 여야 간에 의견을 모으고, 또 사회 각계의 뜻도 모아 가야 개헌을 할 수 있다. 대통령을 4년 중임제로 할 것이냐, 아니면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책임제를 할 것이냐 같은 권력구조부터 논의해야 한다. 또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지 오래돼 요즘 상황에 맞지 않는 요소가 많다. 그걸 다 모아 논의한 끝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것이다. 몇 사람이 우후죽순 격으로 떠든다고 개헌이 되는 게 아니다. (개헌과 관련해 박 대통령이랑 의견을 나눠 본 적이 있나) 없다. 그러나 개헌을 한다면 내년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년이라면 혹시 상반기에도 가능할까?) 가능하다.”
▶유인태= “지금 아니면 안 된다. 집권 초에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중반에 접어들어 차기 주자가 부상하면 이미 물 건너간다. 차기 주자가 권력이 눈앞에 왔는데, 누가 그걸 내놓고 싶겠는가. 지금껏 늘 그래 왔다. 경험칙상으로 개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오랫동안 지속돼 왔지만 시기가 어긋나면서 계속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과정을 쳇바퀴처럼 반복했다. 중요한 건 의지와 타이밍이다.”

-여야 의원 116명이 참여한 ‘개헌추진의원모임’의 일부 의원이 6·4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주장하는데.
▶유기준=“개헌을 하려면 국회의원의 3분의 2, 즉 200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이는 116명에 비해 굉장히 큰 숫자다. 또 개헌추진모임에 참여한 의원들 모두가 올해 개헌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큰 의미는 없는 주장 같다. 이재오 의원이나 남경필 의원 등 여당 중진 의원들도 이 모임에 참가했다지만 그분들은 이젠 여당 내에서 비주류로 봐야 한다.”
▶유인태= “6·4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본다. 개헌추진모임에 의원이 116명이나 참여한 건 여야를 뛰어넘어 개헌에 대해 폭넓은 공감대가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렇게 강하게 개헌에 제동을 거니 여권에서 쉽게 움직이겠는가. 그래도 개헌은 국회 소관이다. 대통령 한마디에 쑥 들어가면 안 된다.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하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움직여야 지방선거가 끝난 뒤 본격적인 개헌 논의가 가능해진다. 올해 안에 반드시 개헌의 밑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개헌 때문에 민생·경제 등이 소홀해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유기준=“맞다. 지금 개헌 논의가 개시되면 다른 중요한 이슈들이 다 빨려 들어간다. 국정 어젠다란 게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것인데 지금 개헌에 들어가면 외교·안보·경제가 모두 올스톱 될 것이다.”
▶유인태=“개헌이 국가 체제를 결정하는 문제라 다른 사안보다 국민적 관심이 많이 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하나의 이슈로 모든 게 덮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이제는 한국 사회가 성숙하고 다양해졌으며 전문화된 면도 많다. 국회에서 개헌 논의가 본격화되면 특위를 만들어 그 안에서 심도 있게 토론해 가면 된다. 개헌특위 때문에 다른 상임위들이 제 기능을 못할 것이란 건 지나친 예단이며 기우다. 민생과 개헌을 투 트랙으로 해 나가야 한다.”

-반면 대통령 임기 후반에는 차기 대권주자들의 반대로 개헌이 늘 물 건너갔지 않나.
▶유기준=“내가 내년이라 못 박은 것이라기보다는 올해보다는 내년이 낫다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다. 현행 헌법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대통령 권한이 너무 집중돼 있어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 아닌가. 또 둘째로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으로 돼 있어 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임기와 맞지 않아 엇박자가 나니까 그걸 일치시키자는 요구도 있다. 그런 만큼 개헌의 필요성은 상존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순리대로 하자는 것이다.”
▶유인태=“5년 단임 대통령은 집권 초반기엔 막강한 권력을 갖지만 후반기엔 국정 운영이 어려울 정도로 급격한 레임덕을 겪게 된다. 반면 그때 부상하기 시작한 차기 대권주자들은 대선에서 승리하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꿈에 부풀게 된다. 자연히 개헌 논의를 일절 거부할 수밖에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역설이다. 그러니까 현 대통령의 힘이 남아 있고 아직 차기 대권주자군이 형성되지 않은 지금이 적기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의 개헌에 대한 속마음은 어떻다고 보나.
▶유기준=“얼마 전 박 대통령이 우리 당 최고위원들과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홍문종 사무총장이 ‘당 살림도 하고 선거도 치러야 하니 정당 기초공천 배제 논란과 관련해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고 박 대통령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답변을 하지 않고, 옆에 배석한 김기춘 비서실장이 ‘당에서 알아서 하십시오’고 하더라. 박 대통령은 아마도 개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 같다. 지금은 때가 아니며 적절한 시점이 되면 당에서 알아서 할 문제로 볼 것 같다는 얘기다.”
▶유인태=“집권하면 누구나 성과를 내놓고 싶지 않은가. 중요한 시기에 개헌 논의로 다른 현안이 묻힐 것을 우려하는 대통령의 심정은 십분 이해한다. 그래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직접적으로 개헌 논의를 일축한 건 의외다. ‘개헌은 국회에서 논의하면 검토하겠다’ 정도에서 그칠 것으로 예상했는데 말이다. 박 대통령의 의원 시절 발언을 보면 더욱 의아하다. 2008년 싱가포르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개헌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땐 이명박정부 1년 차로 현재 시점보다 더 이른 시기였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집권 뒤 개헌 반대 의견을 밝힌 건 자기부정 아닌가.”
▶유기준=“반론이 있다. 거듭 강조하는 얘기지만 개헌의 주체는 대통령이 아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개헌을 놓고 공약을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개헌은 국회가 시대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이다. (그럼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뭐 하러 개헌을 공약했나) 공약은 대선 후보가 여러 분야에 걸쳐 하는 것이니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다 합쳐서 했다고 봐야 한다.”
▶유인태=“언제는 경제와 민생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있었나. 그걸 핑계로 개헌 논의를 미뤄선 영원히 할 수 없다.”
▶유기준=“국회의원들이 개헌이란 중요한 문제를 부업하듯 막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박 대통령이 집권한지 1년도 안된 시점에서 개헌을 하자는 건 대통령 힘빼기용 카드 밖에 안된다고 본다. 지금 민주당 지지율이 낮고 어젠다 세팅 능력도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모처럼 개헌카드 하나 들고 나와 국면을 전환하려는 생각 같다.”

-개헌을 한다면 어떤 통치방식을 구상하고 있나.
▶유인태= “대다수 의원이 공감하는 건 4년 중임의 분권형 대통령제다. 국군통수권과 외교권 등 국가를 대표하는 건 대통령이 갖고,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총리로 권력을 이원화하자는 거다. 권력이 한 군데 쏠려서는 대결과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은 분단체제 아닌가. 사회 통합을 위해선 결국 협의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

-헌법학계 태두인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중앙SUNDAY 인터뷰에서 “현직 대통령에 한해선 중임을 허용하는 조건으로 개헌 논의를 하면 인센티브가 생겨 동력이 붙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유기준=“글쎄… 인센티브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배려로서, 또 개헌을 촉진하려는 취지의 제안이라고 이해한다. 그렇다고 해서 단임제로 당선된 대통령을 또 연임하게 하는 건 문제가 있다.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건가)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유인태=“박 대통령이 개헌에 거부감을 보이는 건 임기 중에 업적을 남겨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일 것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데 개헌 논의가 개시되면 모든 정책이 블랙홀로 빠져든다고 우려할 것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이 지금 개헌 논의를 반대하는 것이지 중임 문제는 이것과는 다른 범주로 봐야 한다. 중임제나 임기 연장은 훨씬 복잡한 문제라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내가 뭐라고 말하는 게 곤란한 것 같다. 박 대통령의 거부로 개헌 논의 자체가 사실상 봉쇄된 상태에서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
▶유기준=“한 가지만 더 말하자. 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개헌 논의를 유보하자 그 다음 날 개헌을 주장하던 여당 의원들이 일제히 말을 바꿨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이건 사실이 아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난 2년간 개헌에 대해 전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19대 국회가 개원한 2012년은 대선 때문에, 또 지난해는 야당의 발목 잡기 때문에 싸우기 바빴다. 어느 세월에 개헌을 생각할 틈이 있었겠나. 따라서 개헌과 관련해 여당 의원들이 뭐 말을 바꾸고 할 것 자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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