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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아들이 몹시 기다리던 운동회 날이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어렸을 적 외치던 소리가 이제 푸른 가을하늘에 여전히 울려 퍼진다. 집에서는 철부지로만 보이던 어린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체계 있는 「게임」을 하는지 흐뭇하기만 하다.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다투는 점수판에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린다.
며칠 전서부터 불안해하던 아들아이는 『엄마 꼭 나와 뛰어야해. 엄마가 뛰지 않으면 나는 그냥 기권이야』하며 몇 번이고 출전할 것을 다짐하였다. 기다리던 17번째, 어머니와 함께의 「게임」이다. 왜 그렇게 다리가 떨리고 가슴은 두근거리는지. 여섯 사람이 한 조가 된 대열에 끼여 섰다.
총을 터뜨리기도 전에 뛰어 나가는 엄마의 조바심 나는 마음. 총 소리가 터지고 힘을 다해서 뛰어 1등을 했다. 그리고 이내 「바통」을 아이에게 넘겨주고 그 1등의 위치를 뺏길세라 쫓아가며 응원했다. 바라던 1등을 차지하고 나니 기쁨보다 눈물이 앞섰다. 이렇게 서로 힘을 합하여 남들보다 앞설 수 있었다는 사실보다도 엄마와 아들이 모든 것을 잊고 이 순간 똑같은 마음으로 뛸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게 만들었다.
이 벅찬 광경을 혼자만이 간직해야할 우리의 처지가 새삼 외롭게 느껴졌다. 두 몫을 감당해야 할 무거운 마음에서 두 아이의 손을 그 어느 때보다도 힘차게 잡고 문을 나섰다.
비록 남들처럼 아빠가 없다해도 앞으로 무슨 일이든 열심히 힘을 합해 해나가면 꼭 좋은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는 흐뭇한 보람을 안고 피곤한 줄도 모르고 집으로 왔다. 최우분<서울 성동구 신당도 251의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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