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저축과 절약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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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화학공업건설에 소요되는 막대한 내자를 효과적으로 동원해야 한다는 상면정책과제 때문에 행정각부간에 경쟁적인 저축계획이 족출하고 있는 것 같다. 1조원 농어촌 저축계획, 국민출자기금 법, 국민복지연금법을 위시해서 문교부의 학생저축강화계획 등은 모두다 이러한 기미를 포착한 「아이디어」이며, 그것이 시사하는 뜻과 배경도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민모두가 저축심을 가지고 또 실지로 저축을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임을 누구도 부인치 않는다. 그러나 자유국가에서 저축자의 환경이나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그것이 강제된다는 것은 결코 장기적인 안목에서 득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저축을 바라지 않는 국민이 없을진대, 저축을 무차별적으로 강요한다는 것은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비애만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것임을 모를 이야 없지 아니한가.
문교부가 마련한 학생저축계획도 그것이 의무화된다면 적지 않은 심리적·경제적·교육적인 갈등을 파생시킬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신중히 검토되어야 마땅하다.
모든 학생에게 국민저축 액을 의무적으로 부과하고 또 그 위에 자력저축에 학생수의 70∼80%가 참가하도록 권장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학생저축의 본질문제를 깊이 검토한 연후에 추진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우선 소득을 계속적으로 가득 하는 자만이 진정한 저축능력자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학생저축은 고유한 의미에서의 저축이 될 수 없다. 학생들에게 국민저축을 의무화시킨다면 결국 학부모에게서 돈을 얻어내야 한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강제성을 띤 학생저축이 교육적일 수는 없다.
소득자의 자제들은 학부모에게서 간단히 돈을 타내어 저축성적을 올릴 수 있고 모범생으로 대우받을 수 있으나, 저축이 피땀으로 이루어진다는 사리를 터득하지는 못할 것이다. 반면, 저소득층으로서 생계조차 어려운 학부모의 자제들은 저축목표를 달성키 위하여 어렸을 적부터 인간적인 굴욕의 감점마저 경험해야 할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부형의 빈곤과 비애를 순진해야 할 학생들이 다시 한번 실감케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제때에 저축을 하지 못함으로써 오는 열등감·소외감을 자극한다면 곧고 바르게 성장해야할 학우들에게 좌절감만 안겨줄 것이다.
또 문교부는 학부형에 의존하지 않고 여가활용, 부업 적인 생산활동, 「바자」 등으로 학생들이 얻은 수입으로 자력저축을 하게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학생수의 70∼80%가 자력저축통장을 갖도록 한다는데 그래도 그 부담이 결국 학부모에게 돌아갈 것임도 명약관화한 것이다. 학생수의 70∼80%까지 통장을 갖도록 독려하게되고 그럼으로써 일선교사들은 목표부터 채우는데 급급하게 될 것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돈벌이에 나서지 않는 한, 부모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을 것도 분명하다. 또 학생들이 학교에서 약초를 재배하고 꽃이나 가축 등을 기르는 일이 정서나 기술교육목적에서가 아니라,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 역시 본말전도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지 한번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어려서부터 저축심을 기른다는 것은 바람직하나, 어린이들의 경우 그것은 절약심을 기르는 것이어야 하지, 무턱대고 저축액수를 늘리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 「노트」한 권, 연필 한 자루 아껴 쓰는 버릇이 길러지고, 새 옷을 입을 형편의 학생이라도 낡은 옷을 즐겨 입을 줄 아는 어린이를 기르는 교육을 해나간다면 누가 강권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성년이 되면 저축을 습관적으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절약심을 기르는 것이 학생저축운동의 본질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서 자가용 통학과 사치스런 생활을 자랑으로 아는 학교주변풍토를 먼저 정화시키는 것이 더 시급한 교육적인 과제가 아닌지 검토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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