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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사회에 대한 긍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사람들(특히 도덕적으로 정의감이 강한)은 『사회가 병들었다』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즐겨 사용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알고 보면 사회가 병들도록 하는데 직접 간접으로 공헌(?)을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는 인간들이 구성하고 있고, 그리고 이 인간들은 원래 병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인간이 아니고 「고릴라」인지 「오랑우탄」인지 「침팬지」인지 아뭏든 그렇고 그런 원숭이 종류였는데, 그 중에서도 뇌수종환자 비슷한 것이었다. 이 유인원이 한때 병든 새끼를 가지고 있었다. 엄밀한 동물학적 견지에서 볼 때 그 새끼원숭이는 정말로 병들어 있었다. 그런데 이병은 비록 몸은 바짝바짝 말라 가는 병이었지만 존속을 위한 투쟁에는 매우 유리한 병이었다. 왜냐면 똑바로 설 수 있는 수직적인 포유동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인간이 된 것이다. 인간이 직립하게 됨으로써 인간의 폐와 기관과 후두와 입은 말을 발음할 수 있는 위치에 각각 놓이게 되었다. 또한 이 직립자체는 머리가 수직으로 몸뚱이를 내려 누르게 함으로써 머리를 최대의 중량으로 발달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두뇌는 엄청나게 사고력을 증진시킬 수가 있었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골반의 뼈는 머리와 동체를 네발 위에 지탱하고있는 다른 동물들의 것보다 더 저항력이 있고 단단해야만 했다.
그 결과 여인이 출산을 함에 있어서 그 당하는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헌신적인 희생을 담보물로 한 것이다.
인간의 형성과정이 이러하니 다른 동물들이 볼 때에는 인간들이야말로 병든 불쌍한 동물이라고 제법 측은하게까지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병은 인류를 무한한 발전으로 유도시켰다고 말할 수가 있겠다.
그러므로 『병든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사회는 병적이라야만 당연할 것이고, 따라서 『병든 사회』는 발전의 가능성을 언제나 안고있는 사회인 것이다.
완전무결한, 즉 병이 없는 건전한 사회는 그 존재를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다. 아니, 처음부터 아예 존재할 수가 없다. 존재한다면 인류의 이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이성은, 즉 인간의 병으로써 얻어진 이 위대한 사고력은 『병든 사회』를 단연코 배척한다. 그리고 이 사고력이 행동화될 때 인간집단의 비극은 발생하고 이 비극은 무수한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때로는 희극으로도 둔갑한다.
그러므로 병든 사회를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대하는 것도 병든 사회가 더 이상 병들지 않도록 하면서 발전케 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간은『병든 사회』에 대해 너무 비관적인 태도로 대할 필요가 없다.
병든 사회가 존재하고 있으니까 인간은 언제나 푸른 꿈을 안고 살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화학적으로 순수한 물은 음료수로 적당치 못하다는 사실은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슬픈 사실이 아닐 수가 없다. [장선영<외대「스페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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