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받치는 망향…외로운 행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흥남철수」의 동지 함남대표단 17명
【부산=체전취재반】단복의 흥남철수를 겪은 함남도민들이 부산체전에서 열매를 맺었다.
젊음의 힘찬 행진이 구덕산 줄기의 지축을 흔든 부산체전 입장식에서 이북5도 선수단의 한 가족인 함남선수단이 가락도 애절한 「고향의 봄」주악 속에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때마침 왼쪽 스탠드에 자리잡은 1천여 재부 함남인사들이 열렬한 성원과 갈채를 보냈다.
비록 17명에 불과한 나이 많은 임원들인 함남선수단이지만 젊은이 못지 않은 보무 당당한 망향의 행진, 더욱 23년 전 필사의 흥남철수를 감행하고 부산에서 터전을 잡은 재부 함남인사들로서는 감격스런 행진이 아닐 수 없었다.
선수단 17명 모두 각군별로 1명씩 선발되었으나 6·25동란이 한창인 50년 12월의 흥남철수에선 다함께 미군LST함정에 몸을 실은 운명의 동지이자 현재는 알차게 살고 있는 재부 함남장학회의 핵심「멤버」들-.
「코발트」색 상의에 흰색하의를 차려입은 함남선수단은 선수 없는 고독의 행진 속에서 다시 한번 지난날의 비극을 되새기며 통일의 염원을 다짐했다.
흥남철수가 시작된 50년 12월19일부터 25일까지 10차에 걸쳐 미군LST로 자유를 택한 3만여 함남도민들에게는 파도와 같은 고난이 밀려왔다.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며, 28시간만에 거제도·여수에 도착한 이들은 생존을 위한 제2의 싸움을 겪어야만했다. 2∼3개월간의 난민수용소생활을 마친 이들은 일제히 부산으로 옮겨 행상으로부터 오늘의 터전을 굳혔다.
단장인 김순영씨(50·함남장학회사무국장)는 신문팔이로 연명해왔고 김경봉씨(53·상업)와 가장 나이가 많은 안동근씨(57·사업)는 자갈치시장에서 목판행사로 굶주린 배를 채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겐 안정된 생활이 찾아왔다. 물론 생활력이 남달리 강한 탓도 있겠지만 김용택씨(56·상업) 김영백씨(52·상업) 안동근씨와 같이 반공투사로서의 활약이 사업추진의 원동력이 되어왔다.
금정산 밑에 있는 초라한 판잣집은 아담한 기와집으로 바뀌고, 드디어는 부산정착 22년만에 송순실씨(48·신용금고사장)와 같은 사장에 양주형씨(50) 김영백씨 같은 실업가 등 착실한 성장을 거두었다.
안정된 생활이기는 하나 그리운 고향을 잊을 수는 없다. 김경봉씨나 김용택씨와 같이 전가족과 함께 월남한 인사보다도 심거룡씨(45)나 김영백씨와 같이 단신 월남한 인사에게는 두고온 부모와 동생들이 몽매간에 잊을 수 없는 얼굴들-. 따라서 그동안 17만으로 팽창한 재부함남도민회는 두고온 가족을 기념하기 위해 5년 전부터 함남장학회를 조직, 보람찬 사업을 추진중이다.
기부금으로 모여진 장학기금은 현재 1천만원, 대학생이면 누구에게나 일정액의 학비를 보조해주는 착실한 장학회-.
고난을 극복한 끝에 보람의 새생활을 맞은 이들 함남선수단은 보무 당당한 행진 속에 다음의 부산체전시에는 고교생, 나아가서는 중학생까지의 장학금 지급을 약속해주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