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정책의 기본 방향-「크리스천·아카데미」주최 세미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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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화적 주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증가되었다. 특히 근래 공주 무령왕릉 발굴에 이어 경주 155호 고분 발굴과 불국사 복원 등 문화재 사업에 따라 「문화재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요청되기도 한다. 이런 시점에서 「크리스천·아카데미」는 5∼6일「아카데미·하우스」에서 『문화재 정책의 기본 방향』을 주제로 한「세미나」를 가졌다.
이두현 박사 (서울대 사대·민속학)가 『문화재 보호의 우선 순위』를, 김유선 박사 (원자력 연구소 부소장)가「보존 과학의 현황과 대책』을 발표했으며 김정배 (고려대)·한상복 (서울대 문리대)·이상일 (성균관대) 교수 등이 토론에 참가했다.
문화재의 보호·관리를 위해 문화재 관리국이 문공부 산하에서 활동하고 있고, 69년이래 문화재 보호법·문화재 보호법 시행령·동 시행 규칙 등의 법적 뒷받침이 마련되어 있으며 문화재 보호 협회 등의 민간 활동이 있으나 근본적으로 정부의 문화재 정책이 아직 효과적이고 원활한 결실을 거두기에 부족함이 많다는 비판이 모임의 주조를 이루었다.
이 박사는 주제 발표에서 전반적인 문화재 정책의 미흡을 지적했다.
문화재의 개념이 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기념물·민속자료 등을 포괄하는 것인데도 문화재 보호법이 발효된지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문화재 보호의 우선 순위가 여전히 유형문화재인 건조물·전적·고문서·회화·조각·공예품 등이며, 특히 그 중에도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됐거나 지정될 유물에만 편중되어 문화재 보호의 균형을 잃고 있으며 문화재 보존이 아니라 보물찾기에 급급한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유형문화재의 보존에 국한하더라도 그 원칙은 ①현상 불변경 원칙 ②문화적 가치 유지 존속에 중심을 둔 관리와 보수 ③문화재 공개 전시에 의한 활용 ④문화재 조사 연구 기능의 확보 등이다.
이 박사는 『이 같은 보존 원칙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의 공개 전시에 의한 활용, 그것도 관광 자원화라는 목적에만 중심을 두어 현상을 변경하고 그 문화재의 문학적 가치와 문화재조사·연구 기능을 말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화재는 대치할 수 없는 역사성을 지닌 것으로 그 원상 보전에는 섬세한 지식과 교양이 필요하며 한번 실수도 다시 기회들 주지 않는 준엄한 문화적 자원이기 때문에 문화재 보존 과학의 실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수백년간 견뎌 온 목조 건물을 「시멘트」로 복원하고 「페인트」로 단청한 광화문과 각 사찰 건물들, 이끼 낀 토기와를 모조리 벗기고 새 기와로 바꾸며 토담을 없애고 화려한 단청을 함으로써 검소를 미덕으로 한 유교 서원인 도산 서원을 변모시킨 것, 3억7천만원을 들여 멀쩡한 서까래를 자르고 난데없이 상투 같은 상륜부를 석가탑에 첨가했으며 육중하고 숨막히는 회랑으로 원상을 해친 불국사 복원 등은 최악의 예들이라고 지적되었다. 외국 관광객에게 우리의 매력은 다름 아닌 한국적인 것이며 긴 역사로 이끼 낀 문화재인데도 아름다운 고도 서울의 면모는 이제 미국의 지방 도시의 모습으로 전락하고 신라 고도 경주가 값싼 관광 도시로 변모하는 감이 있다고도 했다.
유형문화재에 편중함으로써 무형문화재·민속자료·풍속 등 생활 전승과 구비 전승 문화재에 대한 보호는 도외시되고 있으며 「민족 자료 기록 보존소」와 같은 기구나, 전통 민족 예술 보존을 위한 고려, 민속 박물관 및 민속촌의 순수한 자료 보존성이 기대 된다는 설명이다.
더 나아가 국립 문화재 연구소와 같은 기구가 요청되기도 했다. 김유선 박사는 특히 이 같은 연구소는 문화재 보존 과학의 보급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고학적 자료를 다룬다는 뜻에서 고고 과학으로 좁게 적용되는 보존 과학의 중요성이 최근 많이 인식되고 있지만 ①기초적인 학술 연구 단계 ②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및 조사 ③실용화 단계를 포괄하는 보존 과학의 영역이 흔히 실용의 단계에서만 논의되고 있는 점에 관해 김 박사는 불만을 표시했다.
오랜 기간의 연구·실험·개발·시공을 거쳐야만 보존 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흔히 무시된다는 얘기다.
고문화재의 원형 보존·복원·발굴·고고 자료 및 유물의 과학적 감식, 고고 자료의 과학적 연구 조사 등·보존 과학의 넓은 영역이 너무도 급한 실용화의 요청 때문에 큰 곤란을 겪고있다고도 했다.
발굴의 경우 금속·토기·도기 등 재질이 견고한 것들은 부분적 손상을 입어도 원형 유지가 가능하지만 목질·직유·기타 유기 물질들은 거의 그 원형을 찾을 수 없게 분해·소멸되거나 사후 처리가 힘들 정도로 변형되기 때문에 발굴 기술과 발굴 직후의 응급 처리에 관한 과학적 조사, 연구 실험, 기술 개발이 선결 문제다.
지난여름의 경주 고분들의 발굴에서도. 발굴 즉시 소멸해 버린 문화재가 있었다는 것은 보다 문화재의 과학적 보존 과학 및 기술에 관한 연구의 진작을 기대케 하는 것이라고 지적되기도 했다. <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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