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프 꿈 '우리' 눈앞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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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길은 대낮의 태양 아래 훤하고, 뒷골목은 언제나 풍문으로 소란스러울 뿐이다. 의심과 불만으로 가득찬 삼성생명이 여전히 뒷골목에서 손짓했지만 우리은행은 큰길에서 결판을 내기로 했다. '길을 막고 물어봐도' 우리은행이 이겼다.

우리은행은 14일 장충체육관에서 벌어진 5전3선승제의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삼성생명을 91-76으로 물리치고 2승1패로 앞섰다. 이제 1승만 남겼다. 16일 벌어지는 4차전이나 17일 최종 5차전에서 이기면 우승한다.

우리은행은 '정상적인' 경기를 했다. 삼성생명이 그동안 '지역수비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돼온 변칙수비('새깅 투타임;Sagging two-time'=1대1 수비를 하되 부정수비의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협력을 시도하는 수비법)로 나올 기미가 보이면 더욱 빠른 패스와 발놀림으로 맞섰다. 1대1 대결에서도 뒤질 것이 없었다. 삼성생명의 어떤 수비도 효과가 없었다.

반면 삼성생명은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태도 역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삼성생명 벤치는 심판이 파울을 불면"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묘한 웃음을 흘리거나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나 전반 20분간 점프슛을 한 개도 넣지 못한 변연하(19득점)나 턴오버를 연발하는 김계령(13득점)의 교체는 자꾸만 뒤로 미뤘다. 벤치에서는 승부에 대한 집중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은행은 전반 리바운드 수 20-12, 슛성공률 57.1% -22.6%(토털 55.9% -36.4%)의 우세를 앞세워 44-27로 크게 리드한 후 추격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2쿼터 초반 28-21로 쫓기는 듯하자 '맏언니' 조혜진(22득점)이 돌파구를 마련했다. 조혜진이 골밑슛에 이어 이종애(18득점)의 골밑슛을 어시스트, 42-24로 벌리는 장면이 분수령이었다.

우리은행 박명수 감독은 경기 종료 4분여를 남기고 주전 선수를 모두 벤치로 부르는 여유를 부렸다.

삼성생명 박인규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 "상대 수비가 너무 좋았다"고 실토함으로써 가까스로 품위는 지켜냈다. 1, 2차전이 끝난 후 살벌한 표현을 써가며 서로를 헐뜯던 두 감독이 이날은 조용히 체육관을 떠났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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