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교육 칼럼] 싸우지 않고 승리하려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1면

손자병법은 싸워서 이기기 위한 기술 못지않게 지지 않기 위한 지혜를 강조하고 있다. 적대관계에 있는 양대 진영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전쟁은 승패를 떠나 서로에게 너무도 큰 상처를 안겨주기에 가급적 피해야 한다. 리더는 맞춤형 전략으로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데 때로는 지기 않기 위해 창피함도 무릅쓰고 물러서는 것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위계질서와 인의예지를 강조했던 유가사상이나 자연의 순리에서 삶과 지도력의 지혜를 얻고자 했던 도가사상은 태평성대를 구가할 때는 사회발전을 이끄는데 크게 기여했지만 전쟁이 지속되는 난세에는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한계를 드러냈다.

자연스럽게 영웅을 꿈꾸는 이들은 냉철한 통치시스템으로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는 법가사상과 권력 쟁취의 최후수단인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병법서들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서로 피를 흘려야 하는 전쟁은 승리를 하더라도 아군의 피해로 인해 곧 적에게 제압당하기 쉽다. 또 적군을 몰살시키고 승리하게 되면 전리품의 질이 크게 저하돼 전쟁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 쉽고, 승리한 진영에서도 내부적인 권력암투가 벌어져 최고 권력자가 순식간에 교체되는 권력이동이 전개되기 쉽다.

 우리 역사상 최고의 외교관으로 손꼽히는 서희는 993년 거란이 침입하자 전쟁을 피하고 적장인 소손녕과 담판을 벌였다.

그는 소손녕에게 압록강 일대를 장악하고 있는 여진족 때문에 거란과의 관계회복을 도모할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거란의 철군을 유도했으며, 거란이 3년에 걸쳐 압록강 일대의 여진족을 토벌함에 따라 고려는 전쟁을 벌이지 않고 압록강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은 왜군 병사들이 조선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약탈하는 행위를 보면서도 적군에 대한 완벽한 분석과 승리를 위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조선 수군을 쉽사리 움직이지 않을 만큼 냉철했다. 전쟁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왜군이 싸움을 걸어오면 물러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반면 원균은 칠천량 해전에서 왜의 수군과 전면전을 감행해 완패했을 뿐 아니라 자신도 목숨을 잃었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은 전면전에 해당된다. 세계적인 글로벌기업들이 전면적인 특허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삼성과 애플 모두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마도 오판한 기업은 법정투쟁에서 패한 후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진정한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아군의 전력이 경쟁자보다 비교우위에 있음을 각인시켜야 하고, 아군의 전력을 적군에게 노출시키지 말아야 하며, 충격요법을 통해 경쟁자의 항복을 유도해야 한다.

전쟁을 쉽사리 감행하지 않지만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적군을 초토화시켜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놓을 것이라는 암묵적 공포감을 조성해야 한다.

또 최고경영자의 체계적인 이미지 관리를 통해 아군은 물론 경쟁자들로부터 존경심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영관 순천향대 글로벌경영대학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