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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운동과 보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사회의 일부 층에서 요즘 전개하고 있는『하루 1만보 걷기 운동』은 그「캠페인」의 시작과 더불어 곧 하나의 작지 않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그 효과란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도 시민들이 만보를 걸을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거리의 정비가 대대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연하게 들추어 주었다는 바로 그 점이다.
서울의 거리가 얼마나 보행에 불편하냐 하는 것은 걷기 운동을 누가 시키기 이전에도 웬만한 거리는 걸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던 서민들에겐 진즉부터 피부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문제였었다.
그러나 서울시를 비롯한 우리 나라 대도시의 도로건설 상황이나 공로행정을 보면, 이처럼 걷기에 불편을 느끼고 있는 서민들의 사정은 거의 외면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지금까지의 대도시 도로건설은 보행인을 무시한 채 차도건설 위주의 정책으로 일관돼 있었다해서 과언이 아니다. 그 단적인 예가 서울의 북악「스카이웨이」나 한강 강변도로의 건설이다. 그 풍치로 보나 전경으로 보나 세계 어느 수도의 그것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산보로가 될 수도 있었을, 이 길들은 시민의 비싼 세금으로 건설한 공로임에도 불구하고 차 없는 서민들은 숫제 접근도 못하도록 처음부터 보도를 없애버리고 있다.
도심의 가로를 보더라도 차도를 위해서는 고궁의 담을 밀어서까지 확장을 해놓고서도 보행인이 다니는 인도는 인구 30만의 옛 한양이나 인구 6백만의 오늘의 대 서울이나 그 좁음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형편이다.
뿐만 아니라, 그 좁은 인도는 자동차에 밀려난 손수레나 자전거에까지「길을 비켜야」되는 판이니 좁은 것은 그만 두고라도 위험하기조차 하다. 거기에 덧붙여 시내의 대부분의 간선도로는 폭주하는「버스」들의 정류장으로까지 겸용되고 있으니 보도의 상대적인 좁음은= 더욱 압박을 받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자동차 차량의 절대 수는 구미의 대도시의 그것에 비하면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개스」는 어느 외국의 도시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만큼 심하고 독하다.
자동차 유류에 결함이 있는지, 아니면 자동차의 구조 자체에 결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어도 분명한 것은 그 동안 몇 차례 경찰이 떵떵대던 매연차량단속이라는 것이 아무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거의 실효를 거둘 전망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거리를 그대로 두고서『하루 1만보 걷기 운동』을 전개한다 해서 그것이 과연 시민의 큰 호응을 얻어 실현되겠는가. 하물며 그와 같은 거리의 매연 속을 이리 비키고 저리 비키며 걸어보았다 해서 그것이 건강증진이나 이른바 교통지옥 완화에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이번에『하루 1만보 걷기 운동』의「캠페인」을 전개함으로써 서울의 도로사정의 불편한 실정을 시정의 고위상국자가 인식케 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단안을 얻게 된다면 큰 소득이다. 지나친 차도편중의 결과 인도를 소홀히 하고 인도를 없애기 조차했던 종전까지의 주객전도의 도로정책을 지양하고 사람들이 유쾌하게 걸을 수 있는『인도적인 인도』를 건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공로행정이 제일 우선해야 할「도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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