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한국인들-김영희 특파원, 「이민 10년」견문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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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콘데·데·사르제타스」가 너절한 언덕배기 뒷골목의 상오10시. 수십 대의 폭스바겐이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상파울로의 종3>
운전대는 남편이 잡았고 옆자리에는 행상보따리를 든 아내가 앉아있다. 이 거리는 「브라질」에 이민한 한국인 1천 가구 이상이 모여 사는 「한국촌」이고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폭스바겐」의 대열은 3백가구가 넘는 한국행상들의 「출근」풍경이다.
같은 거리의 하오3시.
행상집 꼬마들이 길바닥에서 깡통을 차면서 놀고있다. 이 지역은 원래가 「상파울로」의 종로3가요. 우범지대다.

<경제적 고난 한고비>
한국인의 「브라질」이민도 올해로써 벌써 10주년. 한국촌에서 보는 이런 초보적인 문제를 지닌 채 상파울로의 한국교포들은 그럭저럭 이역에서 생활의 때가 묻고 경제적인 안정이라는 중요한 고비들을 넘겼다. 대개 정착과정은 행상·식료품상·선물이나 양품가게·제품 업의 순서다. 행상만 해도 많으면 월수 l천「달러」는 된다는 얘기다.

<구슬백 제조업 성공>
7천명의 교포가 모여 사는 한국 촌에 나붙은 간판을 보면 교포들이 종사하는 업종도 다양하다. 교회12개를 선두로 사진관5개·한국식당5개·의류 등의 가내공업이 15개 이상, 그밖에 이발소·진료소·합창단·바·여행사·약국·식료품가게·양품점·선물가게·바느질 집 등 골고루 있다.
「상파울로」교포사회의 총 유동자금은 약 2백만「달러」가 될 것이라고 총영사관 소식통은 말하고 있지만 어느 교포는 그 2배는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9년전 이민 와서 4개월전 구슬「백」수공업을 시작한 차원익(30)씨의 경우 15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하나에 3「쿠루제이로」(50「센트)로 파는 구슬「백」을 하루 1천5백 개씩 생산한다. 아침8시부터 밤10시까지 일하는데도 물건이 달린다는데 구슬「백」제품업계의 왕자라는 중국인을 앞지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상파울로」교포 중 가장 유망주의 한사람으로 주목받는 사람은 10년전 1차 이민으로 온 고홍일씨(27).

<한달 매상 3만 달러>
21세인 6년전 「스피커」를 비롯한 전기제품공장을 차렸던 그는 이제 종업원 30명에 한달 매상고가 18만「크루제이로」(3만 달러)에 외근 매달 5만「크루제이로」씩 늘어나고 있다.
전국에 확보한 단골고객이 1천명인 설씨의 공장 자산은 60만「크루제이로」(10만「달러」)로서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가히 교포사회의 「예정재벌」.
교포들간에 「한국촌」은 훈련소로 불린다.
「상파울로」공항에 첫발을 디디는 한국인은 아는 사람이 있건 없건 「한국촌」으로 간다. 그리고는 도착 다음날부터 행상보따리를 들고나서는 것이다.

<환경 나쁜 한국 촌>
한국촌의 생활환경은 최악에 가깝다. 원래 창녀촌·우범지대·빈민굴이었기 때문에 화장실을 비롯한 집안의 위생시설은 영점이다.
한국인들의 대거입주로 대부분의 창녀·범죄자들이 이곳을 떠났지만 오늘 도착하여 내일 보따리장사를 나서야하는 절박한 상황의 한국인들도 생활환경을 개선할 여유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한국 촌이라는 어둠의 훈련소에서 물정을 익혀 교포들 가운데 모험심과 기업적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리오」주「레시피」·「마나우스」같은 땅으로 이주하여 크지 성공하고 있다.

<3만5천수 양잠도>
「리오데 자네이로」에서 자동차로 7시간 들어가는 「봉·기서스·데·이타바포아나」라는 긴 이름을 가진 작은 도시에 사는 교포 최공철씨는 「상파울로」를 떠난 뒤 자동당구대를 개발, 「히트」하여 지금은 그 지방의 유지가 되었다. 「상파울로」를 떠나 대서양연안의 도시 「레시퍼」로 이주한 교포 7가구도 한국 촌과는 다른 정상적인 생활환경 속에서 생활기반을 잡았고 「아마존」강 유역의 대도시인 「마나우스」에서는 교포청년이 「블루진」(청바지)으로 성공했다.

<4만평에 크게 양잠>
농촌에 뿌리를 내린 소수의 교포로는 「브라질」남부「마라나」주의 「폰타·그로사」라는 지방의「산타마리아」농장에서 양계를 하는 14가구와 「론드나리나」지방의 8가구다. 「산타마리아」농장의 14가구는 한 가구 평균 1만 마리 이상의 닭을 치고 그중 규모가 가장 큰 김용혁씨는 3만5천 마리를 친다. 그들도 「아리랑」농장의 1차 이민들처럼 처음엔 밀·옥수수 같은 농작물을 심었다가 초대 농들과 경쟁할 수 없어 실패하고 양계를 시작했다.

<일인들, 경탄과 경계>
지금 추진중인 2백 가구의 양잠이민이 성공하면 한국인의 농업이민으로서는 최대규모가 될 것이다. 이민지역은 「미나스」주 「아리과리」군 지방이다. 「미나스」주의 면적은 한반도의 8배 정도다. 양잠이민은 한가구가 장기 저리로 4만평의 뽕밭을 제공받아 1년에 7, 8회의 양잠을 하게된다.
총영사관측은 1가구의 연간 저축을 최소한 3천「달러」로 잡는다.
한국교포들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진출에 대해 80만 일본교포들은 경탄과 경계의 시선을 던지고 있고 「브라질」정부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탈세 같은 비합법행위도 그렇지만 교포들간의 과당경쟁은 큰 문제다.

<파벌싸움 사라지고>
「브라질」교포사회의 상권처럼 되어 69년 절정에 이르렀던 대사추방운동·영사납치·집단난동사건 같은 파벌싸움도 이제는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아직 그 응어리는 남아있다.
그러나 어느 파에도 속하지 않은 새로운 이민들이 다수가 도착하여 한데 뒤섞이고 나서는 이들 제 3세력이 좋은 접착제 구실을 하고 있으며 내년 10월 준공예정인 20만「달러」규모의 한국회관이 세워지면 교포사회의 공동의 광장이 될 것이다.
3만「달러」값어치의 문화협회회관을 매각하여 한국회관건립비용에 흡수한다는 사실자체가 양파로 갈렸던 교포사회의 통합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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