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드라마『달래』의 연출자 나영세|건전한 프로제작을 위한「시리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작년 봄 어느 날. 학교를 떠난 후 오랜만에 모교를 찾았다.「셰익스피어」극과 중세 영국 낭만 시 강독으로 정평이 있는 은사 이호근 교수의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기념「파티」였다. 만나기 어려운 여러 분야의 선후배·동료들이 모였다. 유독 TV「드라마」연출가란 직업은 혼자였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외로운 소외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화제는 TV「드라마」로 옮겨지게 되었고 학교시절에 안면도 없었던 선후배들이 당시 방영되었던TV「드라마」에 대해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비평하는 것을 들으면서 필자는 필자의 직업에 대한 책임의식을 새삼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TV라는 전파「미디어」가 일반가정에 첫선을 보인 것은 17년이나 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TBC-TV가 개국된 64년부터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미국이나 서구·일본에 비하면 너무 짧은 TV의 역사인 것이다.
이러한 TV의 짧은 성장과정을 통해 TV「드라마」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일반대중이 유익하고 건강하고 즐겁게 시청할 수 있는 TV「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아직 초보단계에 있는 기술적 제약성을 극복하여 피나는 노력을 경주해 온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반응이 좋지 않은 드라마도 있어 빈축을 받은 일도 많지만 모든 TV「드라마」가 오락매체로서 전적으로 도외시되거나 저질 화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난날 일반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생각되는 작품으로는 김희창의『기러기가족』 『만고강산』『탑』, 전호의『맞벌이 부부』『짚세기 신고 왔네』, 그리고「릴리시즘」에 강한 김영수의『거북이』『문』, 그리고 작고한 임희재의『아씨』등과 이밖에『아버지』 『이』『달』『여로』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드라마」들은 TV「드라마」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오락적 청량제를 공급해 준 것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기호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시점에 이르러 새로운 전환기가 필요하게 되며 그러한 전환기는 바로 지금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지난날 인기가 높았던 신파적「멜로」·돌부처 같은 인종의 여성 물·삼각관계 물·애정 물·암투가 짙게 나타나는·피바다 적 사극·「리얼리티」가 없는 괴기 물 등 작법으로 쓰여진「드라마」는 시청자로부터 외면 당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일로·터치」의 사회극·「스릴러」물·형사 물·재판형식의 탐정 물·과학사상물·전쟁 물·「메디컬」물 등 여러 형태의「드라마」물이 매년 새로운 스타일의 국면으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스튜디오」의 제약, 기술 및 기재의 빈곤 때문에 미국 등 선진국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청자의 기호를 그때그때 최대한 만족시켜주기에는 아직 벅차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성으로서 가장 손쉽게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작가와「프로듀서」가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는 고도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일이다. 아무리 기술적 여건이나 제작경비가 풍부하더라도 작품을 꾸려 나가는 대담하고 박진감 있는 작가·프로듀서의 창의력과 예술적 표현 감이 없으면 결실 없는「드라마」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로 시청자의 의식보다 앞서고 윤리성을 바탕으로 하는 흥미 있고 새로운 소재를「리얼」하고 갈등적이고「스피드」하고「드라마틱」한 수법과 일사불란하고 열정적인 제작태도로써 임하면 이제까지의「드라마」보다 좀더 의욕적인「드라마」를 시청자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