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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위기] ② 식량 부족 동병상련의 한일, 그러나 대처는 달랐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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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유(自由)학원의 점심 급식 시간.

<식량 위기> ② 식량 부족 동병상련의 한일, 그러나 대처는 달랐다

지난해 9월 20일 오후 1시 일본 지유(自由)학원의 점심 급식 시간. 교실과 분리돼 있는 중학생 식당에선 여학생 140여명과 교직원 10여명이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이 직접 음식을 배식하고 서빙까지 담당했다. 식탁 하나당 10명의 학생들이 앉았고 이중 5명은 상급생이다. 후배들에게 식사 예절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식사 개시 전에 한 여학생이 의자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들곤 “따뜻한 밥을 제공하기 위해 농부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생각해보자”며 음식을 절대 남기지 말자고 제안했다. 이어 두 여학생이 화이트보드를 들고 나와 이날 점심 식사에 사용된 ‘비용과 열량’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날 점심 메뉴는 교내에서 직접 기른 고구마ㆍ양파를 이용한 샐러드와 빵·생선이었다. 오전에 학생 15명이 2시간 동안 직접 요리한 것이다. 중학 1학년인 사쿠라이 아야소(15)는 “어릴 때 채소를 거의 먹지 않았으나 직접 요리한 뒤부터 채소와 친해졌다”며 “일본은 식량이 부족한 국가이므로 가능한 한 요리할 때 식재료를 남기지 않도록 주의한다”며 밝게 웃었다. 스지무라 카린(15)은 “남중생은 매주 1번, 여중생은 매일 돌아가면서 점심을 직접 조리한다”며 “학교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면서 식량을 아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일본 지유(自由학원의 1학년 여대생이 교내에서 키운 밭작물들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도쿄 히가시쿠루메에 위치한 지유학원(1921년 설립)은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같은 교육이념과 방법으로 일관된 교육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교사(校舍)가 고풍스런 멋을 간직하고 있다. 교내 곳곳에서 학생들이 직접 쌀ㆍ감자ㆍ콩 농사를 짓고 돼지ㆍ벌을 키워 고기와 꿀을 얻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야노 야스히로 학원장은 “우리 학원은 의식주 생활교육과 학생자치를 교육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며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잔반(殘飯) 검사를 하는 데 남은 음식물의 양이 200명 식사분 당 1㎏가 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식량을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아껴 일본의 낮은 식량자급도를 극복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식량자급·식량안보에 관한 한 한국과 일본과 닮은 데가 많다. 한국의 지난해 식량 자급률(사료 곡물 제외)은 45.3%, 일본의 열량(칼로리)기준 식량 자급률은 39%다. 식량 자급률을 1% 올리는 데 최소 연 2000억 원 이상의 재정이 추가돼야 한다는 것이 농림축산식품부의 계산이다.

우리나라는 농가인구 327만 명(세계 65위), 1인당 경지면적 0.5㏊(139위), 농업 종사자 평균 연령 58.9세로 식량자급률을 단기간에 올리기 힘든 구조다.

자신이 직접 조리한 음식에 대해 얘기하는 지유(自由)학원 중학 1년생 사쿠라이 아야소(왼쪽)와 스지무라 카린.

일본 전국농업협동조합 중앙회(JA) 스가하라 도모키는 “일본의 농업인구도 95년 414만 명에서 지난해 251만 명으로 감소했고, 농업인의 평균 연령은 95년 59.1세에서 65.8세로 높아졌다”고 소개했다.

이처럼 식량 부족과 농업문제에 관한 한 한·일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처지다. 하지만 그 처방과 대처는 사뭇 다르다.
일본은 1995년 식육(食育, 식생활 교육)기본법을 제정한 뒤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을 통해 일본 쌀과 지역 음식(local food) 소비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일본 식생활교육추진위원회 고지마 마사미 위원은 “학교 급식에서 지역 농산물의 사용 비율을 현재 55%에서 60% 이상으로 올릴 방침”이며 “쌀가루 빵과 함께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 기대했다.

지유(自由)학원 여학생들이 화이트보드를 들고 나와 점심 식사에 사용된 비용과 열량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내산 식품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식생활 교육이 미흡하다. 국민의 우리 농산물 애호를 장려해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노력도 부족하다. 실제로 한국인의 쌀 소비는 2008년 1인당 연간 75.8㎏에서 2012년 69.8㎏으로 줄어들어 농민의 사기와 보람을 떨어뜨리고 있다.

용인대 식품영양학과 김혜영 교수는 “국산 쌀 등 우리 땅에서 나는 식품을 사랑해야 농사짓는 사람들이 늘어나 식량 자급률도 덩달아 올라간다”며 “식생활 교육 등을 통해 지역 식품(로컬 푸드)의 소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도 일본의 식육기본법을 벤치마킹해 2009년 5월 식생활교육지원법이 제정됐으나 국민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다. 식생활 교육 추진 자원봉사자만 35만 명에 이르는 일본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일본은 식생활 교육의 하나로 전국에 약 140곳의 농·어업 체험 농장을 설치했고, 5년간 약 10만 명의 초등학생이 머물렀다.

우리나라는 식량의 60% 가까이를 해외에 의존하는 원산원소(遠産遠消) 국가이면서 2003년 이후 1인당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 2%씩 증가하는 것도 문제다. 하루 3000t의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면 해마다 식량 수입량을 100만t 이상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만 연간 6000억 원에 달한다.

도쿄=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본 기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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