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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제 실시, 갑오개혁, 한·일 월드컵 … 말의 해엔 굵직한 사건 많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 말을 타고 사냥을 즐기는 고구려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 ‘사냥도’.

올해는 말의 해입니다. 말 중에서도 60년마다 돌아오는 ‘청마(푸른 말)의 해’라고 하죠. 말은 십이(12)간지 중 7번째 동물인데 우리 조상들이 중요히 여겼다고 합니다. 또 말의 해에 태어난 사람은 활동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해요. ‘피겨 여왕’ 김연아(1990년생) 선수,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말띠에 태어났죠. 소중은 말의 해를 맞아 말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와 사회·역사·문화 속에 드러난 말의 모습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2 유지인 학예사(왼쪽)가 말 관련 유물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말’ 관련 지명 744곳

말은 옛날부터 우리와 친숙하고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동물이다. 살아있을 때는 교통과 통신, 군사 및 농경·수렵에 이용됐고, 죽어서는 머리에 쓰는 갓이나 편한 신발·주머니로 제 몸을 내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말을 숭고하게 여기는 풍습이 있었다. 왕과 관련된 설화(신화·전설·민담과 같은 옛 이야기)에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신라 박혁거세의 출생을 알리는 백마 이야기나 고구려 주몽이 말을 타고 승천했다는 전설, 부여의 해부루에게 금와왕의 탄생을 알리는 말에 대한 설화가 대표적이다.

3 박물관 취재에 나선 전지오 학생기자.

말과 관련된 이름을 가진 장소도 많다.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150만개 지명 중 744개가 말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먼 거리를 이동할 때 지친 말을 교환하고 쉬던 선조들의 생활 모습도 지명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경북 상주시 '역마루'나 충남 보령시 '역말'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시 종로구의 골목길인 ‘피맛(避馬)골’도 빼놓을 수 없다.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조선 후기의 화가 김득신이 그린 ‘반상도’라는 그림에는 양반이 말을 타고 지나가고 옆에서 평민이 절을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며 “이로 인해 생기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생긴 골목길이 피맛골인데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다 보니 길을 따라 선술집이 많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띠 해에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다. 백제 성왕이 도읍지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긴 사비천도(538년)와 신라·당나라가 전쟁을 벌였던 나당전쟁(670년)이다. 흥선대원군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된 임오군란(1882년)과 고종 때 추진됐던 개혁 운동인 갑오개혁(1894년), 우리나라가 4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달성한 제17회 한일월드컵(2002년)도 모두 말띠 해에 일어난 일이다.

올해는 청마의 해다. 각각의 해에 색의 의미를 덧붙여 이름을 정해서다. 동양역학에서 쓰이는 10간(干·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과 12지(支·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중 올해는 푸른 색을 의미하는 ‘갑’과 말을 나타내는 ‘오’가 만나 푸른 말의 해가 된 것이다. 순서대로 돌아가는 탓에 지난해는 계사년(검은 뱀의 해), 내년은 을미년(푸른 양의 해)가 된다.

말 십이지신상

중국·몽골·일본 역사 속 말

우리와 가까운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의 경우 말은 왕위의 정당성을 상징한다. 주나라의 목왕이 하늘 나라를 직접 보기 위해 당시 세상의 끝으로 알려진 곤륜산(고대 중국 전설상의 산)으로 갈 때 데리고 간 말은 ‘목왕팔준(穆王八駿)’이라는 8마리의 말이다.

특히 몽골인과 말은 떼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다. 몽골인은 물과 풀을 찾아 집을 옮기며 살아가는 유목 민족인데 주요 이동 수단이 말이었다. 그래서 몽골인들의 삶을 ‘마상생마배장(馬上生馬背長·말에서 태어나, 말에서 자라고, 말에서 죽는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말을 가축으로 여기지 않고 친구로 여길 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본인에게 말은 ‘신들이 타고 다니는 동물’로 여겨졌다. 신이 말을 타고 땅으로 내려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도를 할 때 신에게 바치는 동물로 말이 사용됐다. 말의 색깔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방법도 달랐다. 비가 내리기를 원할 때는 어두운 먹구름을 상징하는 흑마를, 비를 멈추게 하는 제사를 지낼 때는 푸른 하늘을 상징하는 백마를 제사에 사용했다.

말 박물관에 가보니

때마침 경기도박물관은 말띠 해를 맞아 '말 타고 지구 한 바퀴전' 상설 전시를 하고 있었다. 말과 관련된 미술품과 사진이 전시돼 있다. 걸려 있는 곳이죠. 전지오 학생기자는 전시장 입구에서 쥐·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 등 십이지신의 모양이 새겨진 조각 작품을 발견했다. 안내를 담당한 유지인 학예사는 이 중 하나를 가리켰다. “얼굴은 말인데 몸은 사람이죠? 12마리 동물 중 말이 상징하는 십이지신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전지오 학생기자가 "언제 만들어진 작품인가요"라고 묻자 유 학예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답했다.

말 형상이 나온 십이지신은 삼국통일이 이뤄진 시대인 8세기 중반부터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김유신 장군의 묘에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십이지신상 옆에는 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그림과 조각이 전시돼 있었다. 경주 천마총과 금령총에서 발견된 '천마도'와 기마인물형토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때나 나쁜 기운을 쫓을 때 말이 도움을 준다고 여겼다. 전시장 곳곳에 걸려 있는 미술품에서 이런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

박물관은 말 그림에 말갖춤(말을 제어하고 장식하는 도구) 도장을 찍는 체험도 제공했다. 아무 것도 입지 않은 말의 그림에 각 말갖춤에 해당하는 도장을 찍어 완성하는 것이다. 사람이 말에 안정적으로 앉기 위해 장착한 ‘안장’ 도장을 찍고 장식용 도구인 ‘말방울’을 달아준 뒤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과 ‘굴레’를 씌우면 완성된다. 전지오 학생기자는 “말을 탈 때 말갖춤이 하나라도 없다면 무척 불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말 타고 지구 한 바퀴전’ 관람정보

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첫째·셋째 주 월요일 휴관) | 장소 경기도박물관 내 민속생활실 입구 반원형 통로 공간 | 관람료 일반 및 대학생 4000원, 19세 미만 청소년 2000원, 유아·65세 이상 무료 | 문의 031-288-5400

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첫째·셋째 주 월요일 휴관) 장소 박물관 내 민속생활실 입구 반원형 통로 공간 관람료 일반 및 대학생 4000원, 19세 미만 청소년 2000원, 유아·65세 이상 무료 문의 031-288-5400

‘팔자가 세다’는 말띠 속설 미신인가, 사실인가

말의 해에 태어난 여성들에게는 ‘팔자가 세다’는 속설이 따라다닌다. 팔자란 사주팔자의 준말이다.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을 따져 사람의 운명을 이야기하는데 팔자란 사람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운수를 뜻한다. 팔자가 세다는 말은 성격이 드세고, 포악하다고 풀이된다. 그렇다면 이런 속설은 사실일까. 말띠 해에 태어난 여성들이 누구인지 주변에서 찾아보면 속설은 근거 없는 미신임을 알 수 있다. 태어난 해를 가지고 성격을 이야기하는 건 통계적으로 맞지 않다.

다만 말띠 해에 태어난 여성 중엔 유명인이 많은 건 사실이다. 체육계에서는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2연패에 도전하는 김연아 선수와 2012 LPGA(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 신인왕 출신인 유소연 선수가 1990년생으로 각각 말띠에 해당한다. 연예계에선 영화배우 하지원(1978년생)과 고아라(1990년생) 등이 말띠로 유명하다. 이 외에도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가장 높은 봉우리 14개)를 오르는데 성공한 오은선(1966년생) 대장,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1954년생) 모두 말띠 여성이다.

그렇다면 이런 미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조선시대엔 말띠 여성에 대한 좋지 않은 속설은 없었다.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 인조의 비 인열왕후, 효종의 비 인선왕후, 현종의 비 명성왕후가 모두 말띠 해에 태어난 왕비였다. 조선시대에도 말띠 여성은 결혼상대로 적합하지 않았다는 속설이 있었다면 왕비 간택에서 말띠 여성은 제외됐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이런 미신이 우리나라로 건너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일본에선 병오년이었던 1966년 출산율이 크게 떨어졌다. 병오년에 태어난 여성은 성격이 포악하다는 미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해 태어난 사람은 136만 명이었는데 이는 65년 182만 명, 67년 194만 명과 비교된다. 이러한 미신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의 신생아 인구통계에 따르면 백말띠의 해였던 1990년 당시 남자아이는 약 36만명이 태어났지만 여자아이는 3만명에 그쳤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동행취재=전지오(용인 대일초 4학년) 학생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도움말·사진=경기도박물관,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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