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경기|이만기<투자공사 부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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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금년에는 계절이 모두 빠르다. 더위도 일찍 왔고 선들바람도 일찍 불고 있다. 중추절도 예년에 비해 빠른 것 같다.
2월부터 적신호를 보인 호경기의 열풍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데 한국 은행은 이를 과열이라고 지칭하면서도 해석상으로는「핑크·무드」로 보고 싶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호경기에「브레이크」를 걸지 않고 더 계속 시켜야 하겠다는 뜻이다. 아닌게 아니라 과열이든, 「핑크」든 모처럼의 호경기를 더 계속시키고 싶은 것은 정책 당국자뿐 아니라 모든 국민의 희망일 것이다.
그러나 더위가 일찍 오더니 선들바람이 일찍 불게 되는 자연의 이치처럼 적신호의 오랜 계속 끝에 올 선들바람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5일 월례 경제 동향 보고에서는 상품수출이 가장 활기를 보여 경제 활동의 신장을 주도했는데 전월에 비해 2천8백만 달러가 늘어 8개월 동안 17억6천9백만「달러」의 실적을 나타냈고 전년 말보다는 65.6%의 증가율을 보였다.
한편 상반기에 부진했던 세수는 8월에 들어 호조를 보였고 양곡 판매의 증대로 일반 재정 취지는 9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며 8월까지의 누계로는 3백9억원의 흑자를 보였다. 그러나 특별회계와 특별 계정을 포함한 총재정 수지는 8월중 2백25억원의 흑자임에도 누계로는 아직 29억원의 적자가 남아 있다.
생산 및 산 하 지수는 통계가 한달 늦어 7월중에 1%와 5.9%가 감소되었고 재고는 5%가늘었다. 경기 지표는 아직도 적색이지만 생산과 출하가 감소되고 재고가 늘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왕성한 실물 수요가 줄어들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까.
금융 부문도 8월에는 크게 긴축을 나타냈다. 국내 여신 증가가 1백24억원으로 7월까지의 월 평균 증가 액 3백97억원에 비하여 30%에 불과하다. 물론 재정 부문의 흑자가 통화를 회수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나 민간 부문도 7월보다는 상당히 둔화되었다. 국내 여신의 둔화로 통화량도 8월중에는 7월보다 2분의1도 못되는 증가 추세로 그쳤다.
이러한 통화 증가의, 둔화와는 반대로 물가는 8월까지 5.9%, 한달 동안 2.1% 뛰었다. 8월중의 물가는 지금까지의 평균 상승률보다 2배 이상의 상승 속도로 변하였다. 한달 동안 2.1%나 는 것은 국제적인「인플레」추세에 비추어 부득이한 요인인 것 같다.
생산과 출하가 줄면서 재고가 늘고 있음은 수요의 부족보다도 물자 확보를 위한 수입의 급증에 원인이 크다. 8월까지 수입은 22억6천4백만 달러로 월중 3억6천만 달러나 증가되었는데 시설 투자의 확대에도 원인이 있으나 국제적인「인플레」와「자원 전쟁」이라고 부를 만큼 심각해지고 있는 원자재 확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상 앞으로의 경기는 원자재와 물가가 좌우할 것 같다. 그 동안 적색 신호가 꾸준히 계속 되었지만 이 두 가지에 탈이 안 나면 2∼3년간은 더 호경기를 누릴 수도 있다.
이번의 호경기는 회복기를 합하면 작년 9월부터 1월까지 약4개월, 적색 이후 약 7개월 계속해 온 셈인데 호황의 계속이 엄청난 숫자로 경제를 확대시켰음은 분명하다. 73년 상반기에 이미 GNP가 19.2%나 성장되었고 제조업은 30.8%나 늘었으나 역사에 없는 성장 기록일 것이다. 한편 상장 기업의 순이익도 반년 동안에 작년 1년의 수준과 같거나 상회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경기를 식힐 수 있는 유일한 우려는 물가와 원자재 문제인데 그것은 국내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에 속한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다. 미국의 물가가 올랐고, 유럽의 물가가 오르며 일본도 「인플레」로 큰 걱정이다.
일본은 12%의 물가 상승을 보여 전후 최고의 기록일 것이다. 그 때문에 미국은 한때 1920년대 이래의 최고 수준으로 금리를 올리더니 이제는 그 보다도 더 높여 미증유의 수준으로 만들었고 영국도 금리를 기록적으로 올렸으며 일본도 그러한 움직임을 보이려 하고 있다.
국제 금리가 오르지 않았더라면 우리 나라는 금리를 더 내려야 할 형편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기간 호경기를 더 뒷받침할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금리 인하의 꿈은 국제 금리가 다시 인하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는지 모른다.
그 보다도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원자재 확보의 문제이다. 원자재나 자금이나 노동력이나 생산 요소에 애로가 생기면 한창 호황을 누릴 때에도 문을 닫아야 한다. 제품이 잘 팔리고 수익이 오르는 도중에 문을 닫는 안타까움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아무든 이를「흑자 도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이 흑자 도산이 문제되고 있다.
흑자 도산의 유행병이 우리에게 전염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 예방약인 원자재를 우리는 바로 그 전염병이 있는 나라에서 들여오게 되니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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