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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처녀들의 저녁식사, 맥·피·족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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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간식으로 인기 많은 밥버거.

2013년 창업 시장은 전에 없이 움츠러들었다. 꽁꽁 얼어붙은 소비 심리 탓이다. 일부 중산층 창업자는 커피 전문점에, 생계형 창업자들은 소규모 창업이 가능한 도시락 전문점 등에 눈길을 줬지만 거의 대부분의 업종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래도 새해 창업 시장 기상도는 지난해보다는 ‘다소 맑음’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물론 도처에 암초들은 여전하다.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문제는 여전히 출구가 안 보인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의 확대도 가계 소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럼에도 낙관론이 퍼지는 데엔 경기 회복 기대감이 깔려 있어서다. 국내외 전문기관들은 올해 전체로 경제 성장률이 3% 후반대에 달해 지난해보다는 좋아질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런 전망 덕인지 지난 한 해 투자 동면에 빠졌던 프랜차이즈 기업들도 새해에는 신규 브랜드 출시 등 공격적인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대 강병오(창업학) 겸임교수는 “가계소득은 늘어나도 소비지출은 감소하는 ‘불황형 흑자’는 올해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20~30대 여성, 한식 현대화, 소형 점포, 환경 이슈, 모바일 마케팅 등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선 2030세대 여성들의 맥주 소비가 증가하면서 ‘치맥(치킨과 맥주의 합성어)’뿐만 아니라 ‘피맥’도 신조어로 부상하고 있다. 피맥은 ‘피자+맥주’의 줄임말이다. 기존 남성 직장인 취향의 치킨호프집들은 여성 직장인 취향의 카페풍 치킨호프로 변신하고 있다. ‘매드후라이치킨’은 영국식 주점(펍) 분위기로 차별화를 꾀했으며, 치킨을 치즈에 찍어 먹는 ‘치킨 퐁듀’ 등 메뉴도 젊은 여성 고객의 취향에 맞췄다. 피자의 경우 도우가 두텁고 토핑이 많은 미국식 피자 대신 도우가 얇고 화덕에 구워 담백한 이탈리아식 피자가 특히 인기다.

 서울 관철동에서 피맥 가게를 운영 중인 장시내(27)씨는 “치맥은 일반적으로 치킨을 한 마리 통째로 판매하기 때문에 여성 혼자 즐기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라면서 “반면 피맥은 피자 한 판이 아닌 1~2조각만 가지고도 시원한 맥주와 즐길 수 있고 가격 부담도 덜하다”고 설명했다.

 장씨의 가게에서 판매하는 피맥세트는 9900원으로 맥주 두 잔과 피자 안주를 한 세트로 팔며, 70% 정도를 여성들이 소비한다.

 한식 현대화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선 족발은 ‘매운 족발’ 등 새로운 메뉴 개발로 신(新)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족발 역시 20~30대 여성층을 주 고객으로 삼고 있다. 기존 족발이 얇은 편육 형태로 새우젓에 찍어 먹거나 쌈을 싸 먹는 형태라면, 새로 개발된 족발 메뉴는 한입 크기로 두툼하게 잘라 고추장 등 양념장에 버무린 다음 석쇠에 구워 내놓는 점이 특징이다. 수요 계층이 40~50대 남성 또는 가족에서 20~30대 여성으로 바뀌면서 현재 족발집은 이전과 달리 주택가 지역이 아닌 서울 홍익대·강남 지역에 속속 생겨나는 추세다. 서울 서교동 홍익대 인근에 있는 ‘족발중심(www.jokbal.co.kr)’은 ‘콜라겐 제작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이 가게 우은주(32) 점장은 “미용과 건강을 중시하는 젊은 층 고객을 겨냥했다”며 “인테리어 역시 갈색과 노란색이 섞인 팝아트 풍으로 꾸며 기존의 족발집 이미지와 차별화했다”고 말했다.

 또 올해는 창업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33(약 10평) 이하의 미니숍이 인기를 얻을 전망이다. 10평 안팎 규모의 대표업종으로는 분식업이 꼽힌다. 주방뿐만 아니라 테이블 4~5개를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밥버거 전문점이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1년간 ‘뚱스밥버거’ ‘봉구스밥버거’ 등의 밥버거 브랜드가 출시됐다. 이들 업체는 밥을 뭉쳐 버거 모양으로 만든 다음 1500~3000원대에 판매하고 있다. 밥버거집 단골인 재수생 김형준(19)군은 “빵이 아니라 밥이기 때문에 소화도 잘되고 가격도 저렴해 학원을 가야 하는 학생들 간식으로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대구가톨릭대 임현철(외식식품산업학부) 교수도 “1인 가구 증가와 캠핑 인구 급증으로 인해 간편식을 선호하게 될 전망”이라며 “여기에다 점포 임대료를 제외하고 4000만원 이하로 창업할 수 있는 소점포, 소자본 창업 아이템이란 점 덕분에 밥버거 시장은 성장할 여지가 앞으로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환경 이슈도 잘 따져보면 훌륭한 아이템이 될 수 있다. 강병오 교수는 “봄철 황사 외에 겨울철 미세먼지 스모그까지 더해져 실내환경 관리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며 “공기정화기·가습기·마스크 등 제품만으로 스모그에 대처하기 어렵고 특히 겨울철에는 환기를 잘 시키지 않기 때문에 전문 업체에 실내 청소를 의뢰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모바일 마케팅은 새해에는 전체 자영업자로 확산될 전망이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단·책자 등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또 일반적인 판촉활동과 달리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맞춤형 할인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맛집정보 앱 ‘식신(食神) 핫플레이스’는 전국을 300여 개 권역으로 나눈 다음 권역별로 상위 5명의 지역 전문가를 ‘식신’으로 선정해 이들이 추천하는 맛집 정보를 사용자에게 제공한다. 역경매 서비스 앱 ‘돌직구’는 외식·미용 등 자영업주와 소비자가 스마트폰을 통해 직접 일대일로 흥정을 벌인 다음 가격을 정하고 예약할 수 있게 했다. 기존 경매방식과 반대로 판매자(점포주)가 아닌 구매자(소비자)가 먼저 날짜·장소·인원·예산 등을 제시한다. 안병익 씨온(위치기반 SNS 제작업체) 대표는 “정부가 SK텔레콤 등 민간 통신사와 협업을 통한 스마트폰 결제시스템을 골목수퍼·프랜차이즈 가맹점에도 확대할 계획”이라면서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모바일 마케팅을 활용하고자 하는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이슈는 정부 규제다. 임현철 교수는 “지난해 12월 골목상인들이 동반성장위원회에 접수시킨 커피·피자·햄버거 분야의 중소적합업종 선정 여부가 가장 큰 변화와 전망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창업을 할 경우 중기적합업종 선정에 따라 개점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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