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드라마『여로』의 작가, PD 이남섭|건전한 프로 제작을 위한 「시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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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른바 크게「히트」했다는 TV「드라마」『여로』를 끝내 놓고 필자는 한동안 심한 허탈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 허탈감은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다.
가령 이 드라마가 인기를 얻게 된 요소는 어떤 것인가, 앞으로 이와 같은 인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집필·연출태도가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들이 허탈감의 요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필자 나름대로의 냉정한 판단 끝에 이러한 허탈감에 빠지는 것은 작가에게나 연출가에게나 이상의 부담감만 가져다줄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드라마」전체를 놓고 분석하고 반성하며 또 시청자가 TV드라마에 기대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살피는 일은 필자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TV「드라마」에 대해 최소한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여로』를 이야기할 때 TBC의『아씨』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아씨』가『여로』보다 먼저 시작되고 먼저 끝났다고 해서 이 두「프로」가 유사한「드라마」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 두「드라마」는 근본적인 성격이 다르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한국여성의 인종의 미덕을 그렸다는 점에서 상통한 점도 있을지 모르지만『아씨』가『무슨 일이 있어도 참고 사는 한국여성』을 그렸다면『여로』는 주인공「분이」(태현실 분)를 통해『여기에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갈 줄 아는 한국여성의 능동적 일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이 다르다.
물론『아씨』나『여로』를 포함하여 그 전이나 그후에 시청률을 높인 여성취향의「드라마」들이 정조 지키고 순종만 하는, 가령『춘향전』의 춘향 같은「꿈」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만을 부각시키려는 나머지 내용은 다소 다르더라도 주제만은 똑같은「드라마」를 계속해 왔다는데 대해 다소의 책임감은 느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여로』같은「드라마」도「타이밍」을 잘 맞췄기 때문이지 그보다 더 전에 혹은 더 후에 방영됐더라면 그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도 작가나 연출가의 역량에 속하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다만 작가나 연출가가 그 시대 시청자의 의식에 지나치게 영합하려는 나머지 통속적인 면에 치우치게 되면 곤란할 것이다. 통속적인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이지 가령「영구」(장욱제 분)라는 저능의 인물을 등장시켰다고 해서『인기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비판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영구」를 등장시킨 작가·연출가로서의 의도는 현대인의 타산적인 면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또 인간본연의 순수한 면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인간보다는 다소의 결함을 지닌 인물의 등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 기회에 말하고 싶은 것은 TV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사회에 공헌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느냐 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작가나 연출가의 생각에 따라 저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나겠지만 필자로서는 인간의 의지-굽힐 줄 모르는 인간의 끈기를 그림으로써『노력하면 대가를 얻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만약 이러한「드라마」를 만들었을 때 시청률이 낮게 되는 책임을 작가나 연출가에게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매스·미디어」로서 TV의 본질적 성격상 대중을 외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시청률을 높이는 것은 단시일 안에 이룩될 수 없는 것이며 또 객관적인 시청률만으로「드라마」의 가치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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