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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석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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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프리카」북단. 한눈에 지중해를 바라보는 자리에「리비아」는 위치하고 있다. 한반도의 8배만한 면적에 2백1만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다. 경지는 전국토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황량한 사막이다.
「오스만」제국의 속령,「이탈리아」의 식민지, 2차 대전 중엔 피로 물든 전장, 그후 1949년까지 영국·프랑스의 점령지가 되는 등「리비아」의 역사는 그야말로 사막의 갈대와 같았다. 1951년에야 비로소 유엔의 권고로 영국 왕을 원수로 하는 왕국으로 독립했다. 그들은 미국·영국에 군사기지를 제공하고, 친 서방 외교노선을 따랐다. 그러나 1969년9월 군부의「쿠데타」가 성공, 오늘의 공화제가 되었다. 『혁명의 목적은 자유·사회주의·통일을 달성하는데 있다』고 밝혔다.
이들 세력의 총수는 49세의 장년, 「가다피」. 그는 성난 얼굴을 하고 일약「아랍」세계의「스타·플레이어」가 되어 가고 있다.
「리비아」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가 된 것은 그 황량한 사막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불과 15년 전의 일이다. 「에소」가 지질조사에 착수한 것은 56년 봄이었지만, 2년 동안 빈 우물만 파고 있었다. 59년 6월에 이르러 한 우물에서 하루 1만7천5백「배럴」의 석유가 분출했다.
「리비아」의 석유 법은 그보다 훨씬 앞선 1953년에 재 정되었다. 그 조목 중엔 이권지역의 석유 탐광을 가동시키기 위해 이권허가 일로부터 5년 이내에 최초면적의 25%를 정부에 반환해야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이 8년 이내엔 50%, 10년 이내엔 66·33%로 늘어난다. 따라서 석유개발에 참가한 회사들은 혈안이 되어 사막을 뒤졌다.
한편「리비아」혁명정부는 중동전이 지지부진하자 그것을 국제정치의 미끼로 삼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에 공급할 물 호스를 쥐는 입장이 된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아랍」세계에 대한 적대의식을 삼가면서도「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원조는 멈추지 않았다. 도발을 억제할 정도의 한계는 있었지만,「아랍」세계에선 그것을 의식하지 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중동전의 재발에 의해 그 스스로의 안전보장에 손상을 입기 전에 석유의 화를 먼저 당하게 되었다. 전쟁을 억제하려면「아랍」의 석유가 끊어지고,「아랍」의 석유를 받으려면 이스라엘의 도발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 된 것이다. 석유는 실로 카드놀이에서 「조커」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미국으로서는 이번에「리비아」의 원유가 인상조치를 당하며 그럴 수 없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겠지만 그 이상 묘수가 없다. 미국의 중동외교야말로 이제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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