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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환의 시대공감] 소통, 그 풍요 속의 빈곤을 해소하는 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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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호 31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 기반은 탄탄하다. 연고지역 주민과 노장층이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그런데도 지난 연말의 한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 지지도가 48%까지 떨어졌다. 지지도 추락의 원인은 무엇일까? 대통령의 소통 부족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럼 박 대통령 이전 시대에는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유신 이후 신군부 통치가 끝날 때까지 소통은 그때 유행하던 말로 ‘원천 봉쇄’되었다. 국가권력이 국민의 입은 물론 언론의 입에도 재갈을 물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깊은 침묵의 바다에 잠겨 있었다. 1987년 이후에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해졌다.

말길이 열린 뒤에 소통은 원활하게 이루어졌는가? 아니다. 고려대 민영 교수가 지적한 바 있지만, 2000년대에 들어 소통 위기론이 오히려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언론매체의 소통 문제에 대한 관심은 2008년 이후에 급증했다. 진보와 보수 간, 여야 정당 간, 정부와 시민 간, 노동자와 사용자 간, 세대 간, 지역 간의 갈등이 모두 소통의 문제로 치환되면서 소통은 한국 사회에서 어느 문제에 대입해도 설명력을 갖는 하나의 거대담론이 되었다.

민 교수에 따르면 소통 위기론이 본격화한 지난 10여 년은 이전 시대에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소통을 위한 노력을 활발하게 전개한 시기였다. 민주화 이후 정책 결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강조되면서 다양한 주체가 포럼이나 공청회, 토론회, 또는 여론조사 등의 형태로 사회적 소통을 시도했다. 특히 이 시기에 이루어진 인터넷과 디지털 시스템의 발전은 소통의 양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그러니까 지난 10여 년은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소통의 외연을 대폭 확장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통의 문제가 핵심적인 거대담론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소통을 시도하지만 소통을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얻지 못하는 소통 기술의 한계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통째로 그 덫에 걸려 있다.

『논어』에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고 내 뜻을 남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듣기는 접어두고 말하기에만 열을 올린다. 말을 해봐야 상대가 듣지 않으니까 종국에는 내편끼리만 말을 주고받고 상대편에 대해서는 귀를 닫는다. 그래서 끼리끼리 하는 소통은 늘지만, 다른 편과 하는 소통은 하나 마나 아무 쓸 짝이 없다.

정치권은 한술 더 뜬다. ‘친박’이니 ‘노빠’니 떼거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소란을 증폭시킨다. 소통에는 애초부터 뜻이 없는지 핵심 실세라는 사람들이 상대 정당에 대해 때도 곳도 가리지 않고 막말을 내뱉는다. 자기 떼거리에서 충신 대접을 받고 싶은 모양이지만 역사는 그런 이를 간신으로 규정한다.

사람들도 사회도 정치도 다 그 모양이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할수록 소통이 아니라 소란만 커지는 소통의 역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통을 활성화하는 것이라기보다 소통의 기술을 복원하는 것이다. 말하기 전에 충분히 듣고 타협이 가능한 지점으로 스스로 다가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소통의 기술을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중심 언론이 제 자리를 찾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커뮤니케이션 전반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여론의 다양성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나 이념을 대변하는 언론이 있어야겠지만, 중심 언론은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타협점을 찾아주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날개 역할을 하는 언론도 있어야겠지만 몸통 역할을 든든하게 하는 언론이 있을 때 소통과 사회통합이 이루어져 품격 있는 사회로 이행할 수 있다. 중심 언론이 중재나 타협이 아니라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몰입한다면, 언론재단의 김영욱 박사가 지적한 바 있듯이 언론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거나 우리 사회를 분극화한 다원주의 사회로 몰고 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소통을 하면 소통이 되는 시대가 와야 한다. 소란만 키우는 소통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중심 언론은 날개가 아니라 몸통이 되어야 한다. 내 편 말만 하는 언론이 아니라 양편의 견해를 듣고 종합하는 언론에 내일이 있을 것이다.



김민환 고려대 미디어학부 명예교수. 고려대 신방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전남대고려대 교수, 고려대 언론대학원장, 한국언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소설 『담징』(201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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