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곡증권의 발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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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식량 사정의 악화로 식량문제가 매우 중요한 정책 과제로 되어 있는 우리로서는 양곡증산을 위해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낄 수 없는 입장에 있다. 때문에 농민들의 증산의욕을 자극하면 했지 이를 저해하는 시책은 극력 회피해야 할 것이다.
이런 뜻에서 당국이 최근 검토하고 있다는 양곡증권 발행안은 극히 신중히 처리되어야 하겠으며 차제에 곡가 정책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여야 할 것임을 주장하려 한다.
우선 곡가정책의 본질이 수입 맥류의 혼식을 전제로 하여 짜여진 현재의 곡가 체계는 곡류의 국제시세 변동 때문에 그 적합성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치 못한다.
즉 수입소맥과 대맥을 혼식으로 대량 소비케 함으로써 쌀 부족을 「커버」 하는 동시에, 외화지출을 줄인다는 종래의 곡가체계 때문에 국제 소맥가격의 앙등에 따른 「밀가루」보조금 지급제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보조금 지급제는 단기간 내에 수입 곡가가 원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경우에만 정책적인 의미를 갖는 것인데 지금의 국제시세로 보아 그럴 가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현실적인 수입곡가를 전제로 하는 밀가루 보조금 지급제는 차제에 폐지하는 것이 양곡정책의 장기과제로 보나 양곡관리기금의 현상으로 보나 합리적이다.
맥류 혼식정책에서 서류 혼식정책으로 방침을 바꾸려 하는 것도 수입 맥류가격 때문이라 한다면, 맥류 가격의 현실화가 불가피한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또 전국 도매물가 상승률에 맥류가격 현실화가 미치는 영향이 0·5% 수준에도 미달된다는 사실을 보아도, 맥류가격 때문에 양곡 관리기금을 거의 소진시키는 현재의 정책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다.
다음으로, 기왕 양곡관리기금을 80%수준이나 소진했다면 이를 회복시킬 방법은 따로 찾아야 하겠으나 그렇다고 통화량 때문에 추곡 매상자금의 일부를 증권으로 지급한다는 것도 소를 위해 대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여 올해 국내 여신한도 증가계획이 4천억원 수준에 이른다면 3백80억원의 양곡관리기금 때문에 양곡 증권제를 구상하는 것보다는 일반재정의 긴축과 민간금융의 조절 등으로 이를 보완시키는 방법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총 국내 여신규모로 보아 추곡 수매자금 조달을 위한 부문간 조정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추곡수매 대금방출이 이른바 초세적인 통화량 증가요인이라면 몰라도, 분명히 그것이 계절적인 요인에 불과하다면 통화량 문제 때문에 증권수매를 구상한다는 것은 지나친 생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을에 방출된 자금은 봄부터 회수되는 것이므로 크게 우려할 것이 못된다.
끝으로 추곡의 일부를 증권으로 수매하는 경우에 농민들이 이에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 하는 기본문제를 깊이 배려해야 할 것이다.
새마을 사업 등으로 농민들의 관에 대한 인식이 호전되고 있는 차제에 전통적인 불신감을 재생시킬 여지가 없지 않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농정처럼 자발적 참여가 중요한 분야가 없다는 사실을 중시할 때, 통화량 때문에 농민에게 부담을 준다는 것은 농정의 장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깊은 재검토가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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