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견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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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본사「유럽」특파원들의 동구 순방기가 연재되고 있다. 「체코」「헝가리」 「루마니아」 「폴란드」 등, 이름이 별로 낯설지 않은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들은 비록 사회주의의 체제 아래 있지만, 어딘지 「유럽」의 향수와 체취를 그대로 풍겨주는 인상이다.
며칠 전 서울거리를 거닐고 있는 「유고슬라비아」의 한 대학생 모습을 신문지상에서 보았다. 그는 「뉴요크」의 일각에서 볼 수 있는 「히피」의 모습을 그대로 닮고 있었다. 장발에 러닝 샤쓰 바람으로 가두를 산책하는 광경은 그럴 수 없이 자유분방해 보인다. 공산치하의 시민들이 갖고 있는, 그 특유의 긴장되고 차가운 표정이 아니다. 「유고슬라비아」인들은 3「헥타르」정도의 사유지와 별장을 가질 만한 사생활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다.
본사 특파원들이 나들이를 한 동구 제국들은 그 문화적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다. 2차 대전의 전화를 겪은 곳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건물들을 갖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의식도 「유럽」의 문화적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 다만 강대국 정치의 지층운동에 휩쓸려 적과 백의 경계로 나뉘었을 뿐이다. 「프라하」를 거닌 박 특파원은 「체코」 청년들에게서 「이데올로기」의 맹신도가 아니라는 인상을 역연히 보고 있다. 그 젊은이들은 정치적·이념의 가부를 재론하기보다는 「재즈」판 모으기에 여념이 없다. 아니면 축구에 열광하는 「무사상」의 시민들이다.
물론 가두에는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프로퍼갠더」(선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조화와도 같은 형식일 뿐이다. 그렇다고 이들 동구제국의 「이데올로기」가 모두 화석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와 맞붙어 씨름을 하거나 아니면 광신하는, 그런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이런 이념을 하나의 생존방법으로 이용하는 느낌마저 없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보다는 더욱 절실하며 중요한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훌륭한 전통들을 그대로 아끼고 지키며 살고 있는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한편으로 좋은 문화와 풍습들을 더욱 발전시키고 있기까지 한 것이다. 악성 「쇼펭」을 길러낸 「폴란드」는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비판하고 예술 창작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프라하」의 봄』을 맞이했던 「체코」엔 「므냐치고」와 같은 민족적 작가가 현존해 있다.
『「부다페스트」의 미』를 본 「헝가리」엔 「헝가리」광시곡(「리스트」 작곡)을 즐길 수 있는 예술적 분위기를 지키고 있다.
결국 문화 의식과 그 전통을 높이 간직하고 있는 민족들은 「이데올로기」를 비극이나 운명으로써 맞지 않고, 하나의 기교로 생각하는 「유머」를 가진 것 같다. 본사 특파원들의 발길이 그렇게 무겁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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