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카르멘과 황진이는 닮은 꼴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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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오페라 `카르멘` 공연의 한 장면.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된 1820년경 스페인에서 직업군인인 돈 호세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성을 상징한다. 그런가 하면 그의 연적이 된 투우사 에스카밀리오는 용기와 남성다움으로 포장되지만 불안정한 직업군의 남성을 상징한다.

스페인 남부지방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피를 몸에 지닌 카르멘은 정반대의 정서를 지닌 북부지방인 바스크 출신의 돈 호세와의 사랑이 결코 이루어지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에 속박 속의 안정보다는 불안정한 자유를 택한 것이 아닐까.

유럽에서도 비교적 보수적인 편에 속하는 스페인에도 언제나 카르멘처럼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이른바 신여성들은 항상 있었다. ‘돌로레스 라 파랄라’라는 실존 여성은 19세기 스페인의 유명한 플라멩고 가수로 자유분방한 연애행각을 과시하다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카르멘보다 300년 전인 1500년대 초·중반, 조선의 개성에서 첩의 자식으로 태어난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그 외모가 워낙 출중해 10대 때 이웃 총각이 그녀를 사모하다 상사병으로 죽게 되자 마음의 가책으로 기생이 된다. 수많은 양반집 자제들과 때로는 6년간 때로는 한 달간 계약동거를 하기도 한다. 왕족이었던 벽계수는 황진이가 만나주지 않자 황진이의 집 근처 정자에서 노래 한 곡을 크게 부르고 관심을 가지자 모르는 척 그냥 지나가는 꼼수를 쓰다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망공산할제 쉬어간들 어떠리”하는 황진이의 노래에 놀라 뒤돌아보다 낙마하고 만다. 면벽수련 30년 경력의 지족선사마저 유혹으로 파계시킨 황진이가 끝내 자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서경덕을 스승으로 삼아 훗날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를 ‘송도삼절’이라 부르니 카르멘이야말로 황진이의 환생이라 해도 좋지 않을까.

제4막, 세비야의 투우 경기장 밖. 화려한 모습으로 투우사 에스카밀리오와 함께 나타난 카르멘에게 보내는 관중들의 함성 뒤에 숨은 돈 호세는 카르멘과 혼자 남는 순간 그녀에게 사랑을 전하며 돌아올 것을 애원한다. 그러나 이미 사랑은 끝났다며 차갑게 말하는 카르멘에게 돈 호세는 에스카밀리오를 진정으로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며 돈 호세로부터 받은 반지를 땅에 던져 버리는 순간 돈 호세는 카르멘을 흉기로 찌르고 그녀의 시체를 끌어안은 채 “사랑한다”는 말만 수 없이 되풀이하며 오페라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약혼반지에 다이아몬드를 쓰게 된 것은 1477년 오스트리아의 맥시 밀리언 대공이 프랑스 버건디 왕국의 공주에게 청혼하면서 순수하고 열정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다이아몬드가 적합하다고 생각해 선물하면서부터다.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은 이로부터 350년이 지난 시대이니 그 당시 직업군인이었던 돈 호세가 카르멘에게 주었다가 땅바닥에 던져진 그 반지는 과연 다이아몬드 반지였을까?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김중배가 심순애를 무너뜨린 반지는 분명히 다이아몬드였는데 말이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클래식 대표
041-551-50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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