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단폭…인지의 앞날|화·전 갈림길에 선 「크메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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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 공군의 12년에 걸친 인도차이나 공중작전에 막을 내리는 8·15 단폭시한을 맞아 「크메르」의 반정부세력은 군사·외교 양면에서 압력을 가중, 「프놈펜」과 「워싱턴」에 대해 결단을 강요하고 있다. 국토의 약 80%와 인구의 50%를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공산세력은 연일 「프놈펜」에 대한 포위망을 굳히고 있으며 단폭 전야에 실시된 미 공군의 1일 2백회 이상의 지원출격에도 불구하고 포위망을 뚫으려는 「크메르」정부군의 반격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현지소식이다. 이미 많은 외국공관들은 안전한 곳으로 소개됐으며 이 전쟁의 실질적인 지휘를 맡아온 「프놈펜」주재 미국대사관도 이미 대피준비를 마련해 놓고있다.
이와 같은 위급한 상황 속에서 반정부세력의 지휘자인 「시아누크」전 국가주석은 항복요구나 다름없는 조건을 내세워 미국정부에 압력을 넣고있다.
즉 그는 최근 「마이크·맨스필드」미 상원 원내총무에게 보낸 전문에서 ①「크메르」에 대한 미국의 공습 완전중지 ②「크메르」에 대한 직접·간접의 미 군사개입 종결 ③「크메르」정부에 대한 원조의 완전중단 등 3개 조건을 제시하고 현「프놈펜」정부의 고위 지도자들의 해외망명을 허용하겠다고 제의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크메르」정부안의 일부 지도자들도 「크메르」가 공산주의자들 수중에 들어가 이 나라가 공산국가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비상수단으로 「노로돔·시아누크」전 국가주석을 복귀시켜 그에게 정권을 이양하라고 닉슨 미대통령에게 제의했다는 보도가 「프놈펜」에서 나왔다.
이에 앞서 「워싱턴」쪽에서도 얼마 전 「론·놀」대통령을 퇴진시켜 요양을 구실 삼아 미국으로 데려오고 궁극적으로는 「시아누크 를 복귀시키는 방향으로 과도내각을 구성하는 방법을 미국정부가 구상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보도는 「시아누크」 자신에 의해서도 부분적으로 확인된바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미 의회의 압력으로 미국이 8월 15일 하오 1시(한국시간)까지 「크메르」에 대한 공중지원을 중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발단된 것이다. 70년 3월 「시아누크」가 「론·놀」의 군사정권으로 밀려난 후 「론·놀」정권을 지탱해준 것은 미 공군지원뿐 이었다. 지난 3년간을 거의 매일같이 「프놈펜」은 공산군의 압력 앞에 움츠리고 있었지만 위급한 순간마다 미군의 소위 「융단폭격」으로 위기를 그때그때 벗어났던 것이다.
따라서 미군폭격이 중단되었을 경우 「프놈펜」의 문전에 와있는 반정부군을 막아낼 보장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밑에서 「시아누크」는 항복조건을 제시하는 고압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며 「워싱턴」쪽에서도 「론·놀」 퇴진이라는 때늦은 고육지책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정부에서는 단폭 이후에도 계속 『무장공중정찰을 실시하겠으며 그 결과 미국인에 인명피해가 있을 경우 적절한 군사조치를 취한다』는 완곡어법으로 의회결의안에 구애됨이 없이 공중지원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그런 완곡어법과 허위 보고서로 미군이 69년과 70년 사이에 불법으로 「크메르」와 「라오스」를 폭격했다는 사실이 최근 의회에서 크게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해졌다.
군사 면에서 이처럼 암담한 처지에 놓인 「크메르」를 단폭 이후에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정치적 타결에서 약간 엿볼 수 있다.
현재 정부군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세력은 세 갈래로서 ①「크메르·루지」로 불리는 「크메르」의 토착「게릴라」군 ②「시아누크」지지세력으로서 과거「크메르·루지」를 적대시한적도 있는 「캄보디아」 민족해방전선 ③월맹군 등이다.
이중에서 반정부군의 군사적 승리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얻을 세력이 오랜 무력투쟁을 전개해온 「크메르·루지」이며 협상으로 해결이 될 때 유리한 입장에 설 세력이 「시아누크」파이다.
「론·놀」에 의해 축출되기 전의 「시아누크」는 국내 공산주의자를 탄압하면서 미·중공·월맹의 분쟁이 자기 나라에 번져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교묘한 중립곡예외교를 실천한 인물이다. 최근 그는 「마이크·맨스필드」의원에게 보낸 전문에서도 자기는『공산주의를 위해 투쟁하고있는 것이 아니라 「크메르」의 독립과 중립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산국가에 망명하고있는 동안 그의 정치철학이 변질되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래도 「크메르·루지」와 월맹군에 비할 때 가장 민족주의 세력과 가까운 인물이다. 만약 「프놈펜」의 재야민간세력이 「시아누크」와 타협할 수만 있다면 공산군의 압도적 득세를 막을 수 있는 길이 트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미군의 단폭이 실시되면서 「시아누크」와 「론·놀」을 제외한 「프놈펜」지도자들 사이에 협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약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에도 반정부군이 유지하고있는 군사적 우세가 가하는 제약이 너무 큰 것 같다.
결국 「크메르」로서는 결과가 불리할 것이 뻔한 협상에 응하느냐, 아니면 월남군이나 태국군을 끌어들여 이 비참한 전쟁을 최후까지 끌고 가느냐(국내외 사정이 허용하느냐는 별개 문제지만)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되었다.
결과가 양자 중 어느 쪽으로 나든 미국이 주도한 「인도차이나」 휴전에는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키신저」는 이곳에서 분쟁의 현상고정을 노렸던 것이 분명한데 만약 「크메르」에서 현상이 깨어질 경우 월남과 「라오스」에서의 균형도 흔들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월맹에 대한 북폭강화가 휴전을 유도했다는 명제를 「라오스」와 「크메르」에 적용, 여기서도 차례차례 폭격을 집중시킴으로써 최소한 월남정도의 현상구정을 노렸겠지만 월맹을 휴전으로 이끈 데 걸린 시간은 8년이었다. 「크메르」의 경우 그런 여유는 없다.
미군기의 폭격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평화가 가까워 온다는 닉슨과 키신저의 역설적인 전략은 「크메르」에서 좌절되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 「키신저」는 어떤 신출귀몰하는 외교로 이 난국을 해결해 나갈 지 주목된다. <장두성 기자>

<크메르전 일지>
▲4월 16일=월남군,「프놈펜」압력 풀기 위해 「크메르」진격.
▲4월 16일=한국정부, 주 「프놈펜」 한국공관에 철수훈령.
▲4월 17일=미국의 종용으로 「시리크·마타크」,「인·탐」,「쳉·헹」 포함한 거국내각 구성.
▲6월 29일=미 의회의 8·15 단폭 수정안에 닉슨 서명.
▲7월 16일=「크메르」정부, 6개항 평화안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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