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마간산 한 달간의 견문기|신상초<본사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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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주 정부의 연합체인 연방이 오늘의 국제연합과 마찬가지로 가맹주를 망라한 연합조직에 불과한 것이냐 혹은 그 자체가 최고·유일·불가분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냐는 이른바「주권주의」대「연방주의」의 논쟁으로서 건국 후 근 1백 년간이나 지속해왔다. 남북전쟁은 이 문제에 대해 실력으로 해답을 주어 연방정부가 주정부 위에 군림하고 국민에 대해서 직접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해서 미국은 강력한 중앙정부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지만 주권주의의 잔재는 아직도 뿌리깊이 남아「연방으로서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주마다 제도나 법률이 조금씩 다르다.

<획일성 부여는 금물>
예컨대 「뉴요크」주나 「오하이오」주에서 상영 금지되어있는(주로 풍기상의 이유로) 영화도「플로리다」주에서는 뻐젓이 상영될 수 있다.
미국국토는 너무도 넓다. 서울∼동경간 이「제트」기로 1시간4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로스앤젤레스」∼「뉴요크」간의 비행시간이 6시간이고 「뉴요크」∼「마이애미」간의 비행시간이 3시간이 넘는다고 하면 그 넓이는 족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넓고 넓은 땅위에 세계의 모든 인종이, 거의 모든 민족이 그 고유한 풍습·언어·종교·생활양식·가치관을 가진 채 이민해서 사는 것을 생각하면 획일성의 부여란 처음부터 금물인 것이다.
각주의 자연조건·역사조건의 특이성을 존중하여 고도의 자치성을 부여해야하며 제 민족의 고유한 전통은 절대로 해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3대 도시는 흡사 인종의 전시회장 같은 느낌을 준다. 인종 및 민족소속의 다양성과 그 다양성이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가치관의 복합성을 시인하면서 일정한 사회질서를 형성·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제반원칙을 최대한으로 살리는 수밖에 없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미국의 민주주의 정착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의식하고 그 이상을 추구한 인위적인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그 이외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제 민족간 의 평화공존을 보장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채택된 말하자면 일종의 자연발생적인 것임을 새삼스러이 발견했다.

<대국으로서의 긍지>
갖가지 피부색을 지닌 제 민족은 혼효·융합시켜 「아메리카」국민으로서의 등질성을 적어도 정신적인 면에서나마 형성시켜 놓았는가 - 이른바 「아메리카니즘」의 형성여부에 관해서는 아직도 끊임없는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미국에 이민해서 사는 사람들은 그 출신민족 여하를 불문하고 2세가 되면 「아메리카」시민으로서의 의식을 갖고, 대국민으로서의 긍지를 느끼면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세계의 제 민족이 모여들어서 잡초처럼 우거져 살고있는 미국사회에서 생활양식을 정형화해 주는 것은 바로 기계문명이요, 개인의 사회적인 존재가치의 크고 작음을 결정해 주는 것은 돈벌이의 능력이다. 기계문명에 적응할 능력이 없는 자는 바로 이 사회의 낙오자요, 돈벌이의 능력에 뛰어난 자는「아프리카」노예의 후손이라도 위세 당당히 살아나갈 수 있다.

<일본계의 상향 발버둥>
생활양식과 제도가 고도로 「메커니즘」화한 미국사회에서는 다년간 생존경쟁이 우승열패를 결과하여 제 민족간에 일정한 사회적인 위계질서를 형성해 놓았다. 이 위계질서를 군대계급과 비교해서 표현한다면, 「앵글로색슨」족은 대령 이상의 고급지휘관 들이고 「프랑스」계나「게르만」계, 그리고 북구계는 중령·소령들이요, 남구계·동구계·「에이레」계·유태인들은 위관급 장교들이고, 황색인은 하사관들이고 흑인은 졸병들인 것이다.
요즈음 미국의 인종 문제가 소란스러운 것은 하사관급 밖에 안 되는 일계가 경제력을 배경으로 자꾸만 장교로 올라가려고 하고, 또 졸병인 흑인들이 폭력을 가지고 그 신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데 그 기본원인이 있지 않은가고 나는 생각했다. 건국의 틀을 잡아놓은 후 지금까지 계속 최고위계를 독차지하고 있는「앵글로·색슨」은 지배하는 법률 만들기, 제도 만들기의 천재로 보아야한다.

<상류사회로 진출가능>
이처럼 거의 확고한 사회적인 위계질서가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인종이나 동일족계 시민들이 일치단결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소이는 누구를 불문하고 개별적으로는 보다 높은 위계질서에 편입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 빈부간에 격차가 심히 벌어져있음이 가릴 수 없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인 계급투쟁이 벌어지지 않는 소이는 최하층에 속하는 사람도 노력과 기회여하에 따라서는 상류사회로 올라갈 가능성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찌기 미국생활을 경험한 바 있는 「트로츠키」는 미국에서「마르크스」주의운동의 성공을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와도 같다고 단정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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