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황금보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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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황금의 고마움과 그 아름다움을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체험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고고학자들이다. 그많은 신라의 적석 고분속에 고이 간직된 엄청난 비보들은 마치 그들을 위해서처럼 오로지 그들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다. 고고학자들의 설례는 가슴과 손길이 조심스럽게 검은 신라의 흙을 걷어가노라면 천고의 꿈을 깬 영롱한 황금빛이 흙 사이에서 번쩍 첫 햇빛에 빛난다. 그들의 환희는 절정에 다다르고 그 아름다움의 체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오래 참고 오래 견디어낸 신라의 예지가 참으로 희한하게 오늘에 새 생명을 다시 타고나는 것이다.
이러한 황금의 권위와 그 아름다움에 그들의 예지를 심기위해서 고대인들은 그들의 위엄과 조형역량을 기울여서 황금장신구를 만들어냈고 황금의 마력은 거의 구원하게 그 조형과 정신을 보존해주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황금이란 과연 아름답고도 좋은 것이라는 것을 고대인들이 먼저 알고있었다.
그러한 황금이 쏟아지는 서라벌 신라고분의 비보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것이 신라 독자적인 황금보관이며 이 보관은 조형예술의 차원에서나 민족의 정신문화의 차원에서나 참으로 자랑삼을 수 있는 민족의 값진 재산임이 분명하다.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 앞에 우리들의 손으로 홀연히 되살려낸 이번 경주155호 고분의 황금보관발굴의 의의는 그러저러한 뜻으로 놀라움과 즐거움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무릇 고고학발굴이란 현안으로 되어있는 어떤 문제점의 해명과 새로운 과제의 발견에 의의가 큰 것이다. 이번 발굴에서 햇빛을 본 황금보관은 비록 이제까지 알려진 금관총관·서봉총금관·금령총금관등의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동안의 이들같은 계열의 황금보관중에서는 가장 좋은 규범을 이루는 작품이라고 할수있으며 함께 발굴된 엄청난 수의 비보들과 더불어 신라문화의 한얼굴을 환하게 바라볼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번155호분 황금보관은 금판자를 오려만든 모륜위에 산자가 4자 중첩된것같은 모양의 대생수지형립화식을 정면과 그 좌우에 세우고 후측면에는 각기 하나씩의 녹각형립화식을 세운 외관과 금판자에무늬를 투각해서 만든 삼각형의 감투와 이 감투 정면에 꽂아세운 큰 조익형장식, 그리고 마치 날개를 편 새모양의 또하나의 장식 (이두가지가 각기 감투위에 꽂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으로 구성된 내관으로 일식이 갖추어져있다.
이러한 일식의 황금보관은 1921년 경주에서 발굴된 소위 금관총 황금보관에 이미 선례가있었다. 그러나 금관총 황금보관은 대생수지형이 산자형 3단으로 이루어진데 비해서 이번것은 4단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4단의 예는1924년 경주에서 발굴된 금령총출토 황금보관에 그선례가 있었던 것이다. 3각형 감투모양의 내관과 이에 부속된 큰조익형 관식 또한 금관총것과 흡사하지만 다만 날개를 편 새모양의 작은 황금관식은 금관총 황금보관일식에는 없었던 것이다.
은제 또는 협동제 의 같은 계류의 관식이 금관총과 의성탑리고분·양산부부총등 여러고분에서 출토되었으나 이것들은 은제보관 또는 협동보관의 일식으로서 발견된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번 황금보관은 이러한 이제까지의 여러 신라보관양식에 대한 지견이 종합된 황금보관의 새로운 예로서 이 l55호분 보관이 지니는 새 의의가 있다고 할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신라황금보관의 기본의장은 대생수기형과 호생녹각형이며 여기에 내관이 추가되어 일식을 이루었었다. 원래 이러한 보관양식은 멀리 남부「러시아」「노보체르카스크」(Novocherkassk)에서 발견된 고대「스키트·사르마트」계 유목민족의 고분에서 발견된 황금보관에 그 연원이 있었다. 여기에는 사실적인 수목과 사슴을 기본의장으로한 입화형을 세웠으며 황금대륜에는 보옥을 물렸었다.
이러한 먼 연원에서 점차로 표현의 단순화, 도식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신라황금보관양식으로 순화, 정착 되었던것이다.
이러한 단순화 첫과정의 좋은 예가 남부「러시아」「알랙산드폴」(Alexandpol) 고분출토의 간고한 대생수기형의 은제보관 입화식이었으며 나주군반남면옹관기에서 발굴한 금동보관에 나타난 대생수지형립화식이 그뒤에 오는 예였다.
조익형내관식의 연원 또한 우리민족의 민속신앙에 정신적인 깊은 배경을 둔것이었으며 이것은 고구려 쌍류총선도벽화인물상과 개마총벽화인물상에 새깃모양의 관식을 단 관모를 쓰고있는것이 분명하게 이 계열의 양식으로 검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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