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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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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에레혼」국에서는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기계의 사용이 법률로 금지되어 있고 「불합리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있어서 「가설학」의 강의를 하고 있다. 한때 고도로 발달된 공업 국가였던 이 나라에서는 골동품으로 보존되어 있는 녹슨 기계 이외의 다른 기계를 찾아볼 길이 없다.
이 나라의 가장 박식한 고고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 반 기계 혁명이 일어난 것은 약5백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각종 재난을 부수물로 낳으면서도 기계문명의 발달은 그칠 줄 모르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고명한 가설학의 교수 한 분이 기계가 궁극에 가서는 인류를 지배하게 될 것을 증명하였다.
이 학설을 놓고 국론은 양분되어 기계당과 반기계당으로 갈라져 국민의 반수가 줄어들 정도의 장기 내란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결국 반기계당이 승리하게 되어 모든 기계를 파괴하고 기계학 서적과 공장은 완전 소각됨에 이르고 수차의 협의를 거친 뒤 그 기술이 사용 된 후 271년에 이르지 못한 기계를 모두 폐기하고 그 이상의 개량이나 발명을 법률로써 엄중하게 금지시킴에 이르렀다.
얼마 아니 가서 이 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격정이 냉각되고 광인이 아닌 다음엔 금지된 발명품을 다시 가져 보기를 꿈꾸지 않게 되었을 때 이 문제는 종교적 의식의 그것처럼 고고학의 대상으로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에레혼」(Erewhon) 이란 Nowhere(어디에도 없다)를 거꾸로 철자 한 것, 즉 「유토피아」의 반대 뜻이고 187년에 「새뮤얼·버틀러」가 「빅토리아」시대를 특정 짓는 낙관주의적 진보에 대한 신앙을 비판하려는 「디스토피아」적 입장에서 서술한 책자이다.
「허드슨」 연구소의 「칸」 박사가 다녀갔다. 그는 한국의 국민소득이 3배가될 85년이 되면 『한국은 태평양 지역의 「루르」지방』이 될 것이라고 하고 『성장 과정에 어려운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정확한 판단과 사전 대비, 양식을 가지고 대처하면 해결하지 못 할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하면서 『한국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판단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여 말했다고 신문은 전하고 있다.
자원 문제를 놓고 범세계적인 비관론이 판을 치던 1971년4월 일본 경도에서 개최 된 「허드슨」 연구소 주최의 「70년대 기업 환경」 회의에서 『기술 진보의 여지는 무한한 까닭에 지구상의 미개발 자원의 이용 가능 양은 금후도 계속 증대하므로 성장의 한계를 염려할 필요는 없다. 기원 2100년에 가서 세계 인구는 2백 억으로 늘어날 것이 예견되나 이들의 모두가 오늘날의 「프랑스」인의 평균 생활 수준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바 있다.
물론 미래는 「핑크」빛이 아니고 그렇다고 비관만 할 검은빛도 아니다.
미래에는 빛이 있을 수 없고 다만 우리의 빛을 위한 의지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숙명론적으로 결정된 「코스」를 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미래라면 비관적으로 오늘부터 울거나 불안해하는 것도, 낙관적으로 현실을 보장하는 것도 모두 자기 나름대로의 편익 때문에 멋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미래란 적어도 우리의 의지로 좌우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오늘을 우리는 바르게 살려고 한다. 「칸」씨의 낙관론에 오늘을 안일하게 넘길 수만은 없다는 것은 위에 인용한 세 가지 그의 말을 통해서 음미해 보아야 하겠다. 【노융희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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