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하고 아담한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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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전 부통령 성재 이시영 선생의 유물전이 신세계화랑에 의해 마련 돼(17일∼29일) 유고30점과 그가 생전에 쓰던 벼루 등 문방구 15점이 겉들여 전시되고 있다. 신세계화랑의 이 기획전은 우남 이승만·백범 김구에 이어 세 번째의 작고명사에 대한 추모전이다.
성재(1870∼1953)는 초대부통령을 역임했지만 오히려 최근세의 명필로 또 독립운동의 원훈으로 명성이 높은 분이다. 경주 이씨 명문의 출신으로서 한말에 평안도 감찰사, 홍문관부제학을 지냈으나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마자온 가족을 이끌고 북간도로 들어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맨 처음 만주에서의 독립군 양성을 꾀하였다. 그리고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조직했고 해방과 더불어 귀국했다.
그의 유묵은 그리 많이 전하고 있지 않다. 직업적인 서화가가 아니기 때문에 남에게 별로 써 주는 일이 없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작품으로 보아 온화한 가운데 기백이 넘치는 필치. 곧 그의 품성과 정신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단아하고 아담한 맛이 있고 안노공의 서법을 쓴 분』이라고 한 것은 서예가 원곡의 평이다.
성재는 이제 작고한지 20년이지만 그의 유품들이 흐트러져 막상 소물전을 베풀려 해도 물건이 없더라는 주최측의 고충담이다. 일제 36년간을 외지에서 보냈을 뿐 아니라 동난 중 부산에서 쓰시던 유품마저 작고 당시 손자가 어려서 제대로 간수하기 어려웠으리라고 한다.
하지만 적은 점수나마 그의 곧은 기개와 애국의 발자취를 새삼 되새겨 보게 된다는 점에서 이 전시회는 뜻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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