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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는 왜 추리소설이 없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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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모든 조건은 이미 독자에게 제시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해결은 합리적인 추리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드로디·세이어스 에드거·앨런·포에 연원을 두고 있는 추리소설이 기괴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 독립된 자기 영역을 차지하게 된 것은 영국의 코넌·도일 이후의 일이다. 포의 『모르그가의 살인』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네가 범인이다』 등 몇 편의 소설이 추리소설의 원조가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거기에는 아직 기괴 소설적 요소가 완전히 불식되어 있지 않았다.
포가 오늘날 추리소설의 원조로 여겨지고 있는 여러 소설들을 창작해 낸 것은 1840년대의 일이다. 그런데 추리소설에서 괴기적 요소를 배제하고 명실 그대로 추리소설을 추리소설답게 가꾸어 놓은 것은 도일이 1890년대에 『바스카빌 가의 개』 『적박연맹』 『보히미어의 혼"』 등을 생산해 냄으로써 이루어진 완벽에의 접근이었던 것이다.
도일의 일련의 작품들은 모두 명탐정 셜록·홈즈에 의해서 일견 해결불가능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추리에 따라 해결됨으로써 이루어지고 있는데 어느 작품에서나 모든 조건은 미리 독자에게 제시되어 있고, 해결은 합리적 추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추리소설은 작중에 등장하는 추리자(탐정역)의 추리가 독자의 추리력을 자극하면서 사건이 해결에 접근해 가도록 짜여져 있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는 퍼즐을 관전하는 재미이며 거기에 어떠한 기만도 섞여 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추리소설에 괴기적 요소가 기어들면 냉엄한 논리의 추리에서 얻는 추리소설만이 갖는 재미가 오히려 반감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추리소설은 작중의 추리자와 독자가 어떤 수수께끼 앞에 똑같은 조건을 제시받고 세워짐으로써 양자사이에 페어·플레이가 이루어지도록 짜여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소설 작법상 페어·플레이의 원칙이라고 하며 이 원칙에서 벗어난 추리 소설은 단순한 괴기 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근년에 이르러 우리 작품에서도 몇몇 작가에 의해서 추리소설이 시도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필자의 소견으로는 그것들이 모두 추리소설이라기 보다 괴기소설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또 근자에 TV 대중 오락지 등 소비문화의 향상으로 추리소설 내지 추리적 연속물에 대한 관심이 점고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여기서도 추리물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괴기물을 다루고 있는 것은 웬일인가. 우리 작단에 본격적 추리물이 성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추리물에서 한시바삐 괴기적 요소를 떨어버려야 할 것이다.
필자는 근래 몇 해 사이에 몇 편의 장편 추리소설을 선보인 적이 있으나 외국의 예처럼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 것은 우리 추리 작단의 불황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서두부터 무조건 해골바가지가 나오는 여성의 혼기서린 기성이 튀어나오고 논리적 단계를 밟아 수수께끼가 풀려 나가는 플로트의 진행은 하나도 없이 공연히 까닭을 알 수 없는 공포 분위기만 조성되게 하는 것은 독자(또는 시청자)를 추리력이 전혀 없는 백치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추리소설에는 도저히 어길 수 없는 철칙이 있다. 측 살인 또는 기타의 트릭에 의해서 만들어진 수수께끼가 우선 독자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2인 이상의 용의자가 제시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어째서 2인 이상의 인물이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었는지 그 까닭이(조건이) 독자 앞에 모두 제시되어야 하며 이 조건을 근거로 수수께끼 앞에 독자와 함께 세워지는 추리자가 동감하게 된다.
이리하여 독자는 셜록·홈즈가 되어 수수께끼를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그러면서 작중의 추리자의 추리와 자신의 추리가 일치할 때 손에 땀을 쥐고 쾌재를 부르는- 이것이 모든 추리소설을 추리소설답게 하는 요소이며 불가결한 철칙인 것이다. 이렇게 퍼즐을 관전하도록 수수께끼 앞에 세워진 관객 앞에 난데없이 여인의 괴성이 튀어나오게 하고 해골바가지가 튀어나오게 한다면 관객은 작중의 추리자와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 가다가 그만 흥미를 잃고 책을 덮어버릴 것이며 TV의 채널을 딴 데로 돌려버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추리소설이 예술일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것을 여기서 새삼스럽게 다시 들추어 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이 글의 목적이 추리소설의 예술성 여부를 가리려는데 있지 않고 우리 작단에 참다운 추리소설이 발아하도록 일조가 되려는데 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이 괴기물과 어떻게 다르냐 하는 것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 작단에서의 추리소설의 발아를 위해 로널드·녹스가 들고있는 추리소설의 십계를 예시하려고 한다.
①진범인은 스토리의 서두에서 이미 독자에게 소개된 인물이 아니어서는 안된다.
②초 자연력 또는 실명하기 곤란한 작용(예컨대 괴기적인 것 등)은 꼭 배제되지 않으면 안된다.
③하나 이상의 밀실 또는 비밀통로 같은 것이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④현실에 없는 독약이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⑤논리적 사고력을 갖지 않은 인물이 탐정으로 등장해서는 안된다.
⑥우연지사가 탐정을 도와주어서는 안된다.
⑦탐정 자신이 범인이어서는 안된다.
⑧탐정은 독자에게 은폐되어온 수단에 의해서 수수깨끼를 해결해서는 안된다.
⑨탐정은 독자에게 비밀을 가져서는 안된다.
⑩쌍생아 또는 아주 닮은 인물 중 1인이 범인이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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