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스웨덴 TV와의 녹음 인터뷰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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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소련의 저명한 핵 물리학자 산드레이·드미트리에비치·사하로프(52)는 오래 전부터 소련자유화 운동의 앞장을 서왔다. 소련원자탄개발의 제1급 공로자로서 스탈린 상을 받고 소련과학 아카데미 회원이었던 그의 대 정부공격은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자유로와 정부로부터 묵인을 받아 왔었다. 최근 사하로프는 또 다시 스웨덴 텔리비젼과의 녹음 인터뷰에서 소련 당 체제와 당 관료들의 횡포를 신랄히 비난, 처음으로 비밀경찰인 KGB에 소환되어 경고를 받았다. 다음은 소련 지식인의 대표로서 사회의 개방과 언론의 자유 및 민주주의를 요구한 사하로프의 텔리비젼·인터뷰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편집자 주>
▲문=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사하로프=나도 처음에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얼마 후 국내 정치 및 외교 정책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공허한 선전 문귀가 아닌가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서는 경제 및 정치권력의 미盲유의 집중화, 즉 유례없는 고도의 독점화가 짓누르고 있다. 국가가 모든 경제를 지배하고 있으니까 혁명 후 레닌이 말했듯이 국가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을지….

<내부의 모순 얼버무려>
이는 사회주의가 새로운 것은 하나도 가져다주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소련의 사회주의는 미국이나 다른 서방국가에서 이미 진행된 자본주의 발달의 극단적인 형태일 뿐이다. 다르다면 훨씬 고도로 독점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범죄와 소외 등 문제에서 양적으로 자본주의 국가와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게 이상할 것 없다. 우리 사회만이 부자유, 사상적인 질곡의 극한 상황에 놓여있다.
▲문=소련 사회에서 가장 못 마땅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사하로프=부자유와 또 하나는 지배 조직의 관료주의화이다. 통치는 유례없을 정도로 비합리적으로 행사되며 내부의 엄청난 모순을 얼버무려 그럴듯한 외형을 과장하며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독선적인 통치이다.
▲문=소련 사회가 현재 계급 사회라고 생각하는가?
▲사하로프=이 사회는 언제나 평등이 없다는 사실로 특징 지어져 왔다. 그렇다고 이를 계급 구조로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 사회는 그 나름대로의 특성이 있으므로….
▲문=그런데 불공평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사하로프=불공평, 그렇다. 여러면에서 불공평하다. 도시와 농촌 사이의 예를 들어보자. 집단농장 농민들은 여행 증명서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실제로 자기네 거주지인 농장에 묶여 상사의 허가가 있어야만 떠날 수 있다.
모스크바나 다른 대도시에서는 상품이라든가 일상 생활면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 이 패스 제도는 지역적인 분리, 불공평을 응고시키고 있다.

<예전엔 본인도 큰 특혜>
▲문=귀하는 자신도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는데….
▲사하로프=그렇다. 예전에 나는 군수 산업의 지도층에 있었으므로 엄청난 특혜를 누렸다. 소련의 기준에서 보면 수입도 엄청났거니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특전이…
▲문=공산당원들은 어떤 특전을 받고 있는가?
▲사하로프=예를 들면 휴양지 이용이라든가 특별 병실 등의 혜택을 받고 있다.
실질적인 특혜는 직장과 승진에서 나타난다. 공장이라든가 기술 책임자 등 지도적 지위는 당원만이 가질 수 있다. 예외는 극히 드물다.
승진제도도 당 체제 내의 상호관계에서만 이루어진다. 지도적 위치는 극소수의 그룹에 제한되어 이동이 있더라도 자기네끼리 자리바꿈만 한다.
물질적으로도 위원들은 커다란 특전을 받고 있다. 급료 외에 다른 봉투가 돌려진다. 이 제도는 없어졌다가 다시 부활되곤 하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좋은 생활 필수품도 싼값으로 구입한다. 같은 금액이라도 특별 상점에 가서 일반 상점에서 보다 훨씬 좋은 것을 살 수 있다.
▲문=그런 현상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사하로프=「할 수 있는 일과「해야 할」일은 별개 문제이다. 이런 제도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그렇다면 외부의 힘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지?
▲사하로프=외국에서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우리가 50년간의 고립을 깨뜨리고 있다는 사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발전할 지에 대하여는 말하기 힘들다.

<민족주의 경향 움트고>
▲눈=소련 내부의 힘은?
▲사하로프=사태의 진전이 있으나 무어라 미리 말할 수 없을 만큼 눈에 띄지 않게 지하에서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덩치가 큰 나라이므로 각 지역의 통일성도 없으려니와 정보 얻기나 접촉이 어려워 파악하기 어렵다. 각지에서 민족주의 경향이 움트고 있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긍정적으로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이를테면 우크라이나 등에서는 민족주의의 흐름이 민주화 노력과 밀접히 연관되어 고개를 들고 있다.
▲문=매우 회의적인 듯한 말인데…?
▲사하로프=내가 회의를 품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이다. 나는 사회주의가 사상적인 차원에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뭔가 새로운 것을 가져왔다고 생각 않는다. 물론 이따금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파괴적인 면이 더 많았다. 긍정적이란 건 인간의 평등사상인데 이는 사회조직에서 보다는 다른 상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게 옳을 것이다. 우리가 이룩해 놓은 것이 적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특별한 처지에서의 힘겨운 정치투쟁 끝에 얻은 것이라고는 허탈감·무감각·냉소뿐이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안에서 예언하기는 힘들다. 밖에서 예측하는게 물론 훨씬 쉬울 것이다.<슈피겔 지서><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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