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풀과 화분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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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며칠전 모 일간지에 『돼지 풀과 화분병』에 관한 기사가 대문짝 만하게 실렸다. 화분 병을 일으키는 돼지풀이 우리 나라 남부지방에서만 발견되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 일원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돼지풀이 북상(?) 한 것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돼지풀에 의한 화분병 환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당국에서는 제초작업을 서두르라는 기사내용이었다.
기사중의 돼지풀은 「거지풀」을 잘 못 부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0세기초 구미에서 일본으로 전해진 이 풀의 속명이 hogweed(사실은 오히려 ragweed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것을 그대로 직역해서「돼지 풀」이라 부른 것이 그만 돼지풀이 돼버린 것 같다. ·
지방에 따라서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흔히 돼지풀이라고 하면 돼지가 잘먹는 풀, 그러니까 명아주·비름·쉬비름 등을 일컫는다.
따라서 문제로 삼아지고 있는 풀은 사실 돼지의 사료식물도 아닐 뿐만 아니라 좋지 않은 냄새, 쓸모 없는 풀대, 초라한 잎새의 풀이므로 돼지풀이라기 보다는「거지풀」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의 영어속명도 ragweed가 아닌가.
한편 이 돼지풀이 화분병의 원인이 된다고 해서 제초 작업을 하는 등 소동을 벌여야 하는 것인지 자못 의심스럽다. 작년엔가 어떤 일간지에서도 『돼지풀 제거 운운』하는 기사로 떠들썩하게 했었는데 당시 우리 대학에 와 있던 미국의 식물생태학계「로빈슨」박사가 이를 보고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필요 이상의 히스테리라고 일소에 붙였던 사실이 기억된다. 물론 미국일대에서 일종의 토질처럼 되어있는 건초열(hayfevey=화분병)의 원인이 한때는 거지풀의 꽃가루로 지목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거지풀만이 유일하게 건초열을 발병케 하는 원인식물로 여기는 학자는 없다.
꽃가루에 의한 알레르기성 질환이기 때문에 꽃가루 병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건초열의 원인은 아직 확실히 구명되지 않고 있으나 거지풀 외에도 농작물인 옥수수, 목초인 치모시, 잡초인 강아지풀, 수목인 소나무·플라타너스·삼나무 등이 건초 열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지풀을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이 있을지 의문이 가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옥수수·치모시·강아지풀·소나무·플라타너스 등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을까 두렵다. <이일구(건대 문리대학장 이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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