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어린이들의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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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7일과 18일 이틀동안 무고한 어린이가 3명이나 살해되고, 2명이 중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졌다.
철교 위에서 어린이를 인질로 잡아 경찰과 대치하는가 하면,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하면서 어린이를 깔아 1명을 죽게 하고 1명을 중상케 했으며 또 사병이 카빈을 난사하여 무고한 유아 2명을 포함한 5명을 살해하고 4명을 부상시켰다. 올 들어 최고의 무더위에 발광한 어른들이 철없는 어린이들을 동반 자살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기막힌 소식들이다.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실연에 지쳐 미칠 지경이 되었다 한들, 이 나라의 어른들이 국민학교 학생을 인질로 하여 경찰의 체포를 면하려 하고, 또 어른·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사격을 하게 되었으니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처럼 살벌해 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산문에는 1백 17일간의 표류 끝에 구조된 외국인 베일리씨 부부에 대한 한국선원들의 인간애 얘기가 대서특필되고 있는데 이들을 구조한 월미호의 기국에서는 무차별 난사가 행해져 수많은 사람이 사살되고 있다면 이 보다 더 아이러니컬한 일은 없을 것이다.
실연사병이나 인질극을 벌인 유군이나 모두 20대의 청년임을 볼 때, 우리 사회에 얼마나 인간존중 교육이 결핍돼 있었나 하는 반성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도 총기를 휴대한 탈선군인들이 다방 레지들을 인질로 하여 무차별 난사하고 자폭하거나 자기를 버리고 달아난 애인을 인질로 하여 경찰과 대치한 사건들이 적지 않았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들 범인들 중에는 중등교육까지 받은 자들이 많은 것을 볼 때, 이 나라의 학교교육이나 사회교육은 물론 사회 전체가 근본적으로 인간경시의 풍조를 예사로 알아 왔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모든 교육의 궁국적 목표란 결국 지육과 덕육을 통해 인간의 존중함을 가르치고 이웃끼리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데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이 나라 교육계와 사회전체를 도도히 흐르고 있는 지나친 성공위주 주의·이기사상과 찰나적 향락주의 사조가 인간을 목적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수단으로 생각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존엄성의 존중이라든가, 희생정신·애타심 등을 교육하지 않고 지나치게 출세위주로만 교육을 하고 있고, 사회풍조 또한 금권만능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업신여기고, 인간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특히 국민의 사명·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군인이 탈영하여 나라를 지키라는 무기로 변심한 애인을 사살하기 위하여 무차별 사살했다는 사실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물론 60만 대군을 수용하고 있는 군인사회에 몇몇 정신 이상자와 심신 노약자들이 섞여들어 사고를 저지른 것이므로 이 사건을 가지고 군 전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럴수록 한창 성장기에 있는 이러한 청년들을 수용하고 있는 군 당국으로서는 평소부터 이들의 정신위생 상태를 체크하고, 군무에 부적합한 이상자는 하루 속히 도태하는 조치를 춰해야 할 것이다. 여기 정신위생학적 고려 위에선 새로운 정훈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하겠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고 어린이 헌장에서도 구가하고 있으나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어린이를 인간이하로 취급하는 경향이 뿌리 깊다는 것을 솔직이 인정해야 한다. 딸이라고 하여 영아를 버리는 어머니가 있는가 하면, 남의 집 어린이를 유괴 해다가는 검 팔이·소매치기 등으로 부려먹는 끔찍스러운 범죄가 아직도 꼬리를 물고 있으며, 미성년 가출소녀를 꾀어 강제로 인신매매를 시키는 악습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는 세태는 분명히 정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교육과 사회교화에 관계하는 당국자와 이 나라의 모든 지도층 인사들이 이 비뚤어진 세태의 광정을 위해 연대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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