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50㎞ F1 황제 슈마허, 스키 사고로 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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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영국 실버스톤 서킷에 참석한 슈마허.

포뮬러 원(F1)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라이버로 꼽히는 미하엘 슈마허(Michael Schumacher·44)가 스키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AP통신 등 외신은 30일 “슈마허가 프랑스에서 스키를 타다 사고로 머리를 다쳤다”며 “상태가 위중하다”고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슈마허는 현지시간으로 29일 오전 11시 프랑스 알프스 메리벨 스키장에서 아들 마이크(14)와 함께 스키를 타던 중 코스를 벗어나 추락하면서 머리를 다쳤다.

 슈마허를 치료한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병원 의료진은 30일 기자회견에서 “슈마허는 병원 도착 직후 혼수상태에 빠져 뇌수술을 받았다”며 “(생명이) 위태롭다”고 밝혔다. 병원 측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지만 그가 회복될 수 있을지를 말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슈마허가 몰아온 F1 경주차들의 최고 속도는 시간당 350㎞에 달한다. 독일 출신의 슈마허는 2006년 사실상 은퇴한 뒤 스카이다이빙, 모터 사이클링, 스키 등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취미를 즐겨왔다. 특히 아내, 두 자녀와 스위스에서 살면서 스키를 마음껏 타기 위해 프랑스 알프스에도 집을 마련한 스키광이다.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스키 활강 속도는 시속 100~130㎞ 정도이며, 순간 최고 속도는 200㎞를 넘기도 한다. 일반인의 경우 시속 20~30㎞가 보통이다.

2006년 1월 이탈리아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고 있는 슈마허. [AP=뉴시스]

 슈마허는 1991년 F1에 데뷔한 뒤 7차례 F1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1950년 시작된 F1에서 2회 이상 종합우승을 한 드라이버는 단 15명뿐이다. 또 F1 개별 경기 최다 우승(91승) 기록을 갖고 있다. 2위 알랭 프로스트와 무려 40회나 차이가 난다. 그가 ‘F1의 전설’로 불리는 이유다. 보유 재산도 약 8억2300만 달러(약 8600억원)로 전 세계 스포츠 선수 중 둘째로 많다. 슈마허는 독일 퀼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벽돌공이었으며 어머니는 지역 카트 경주장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아버지의 취미가 카트 경주였던 덕에 슈마허의 드라이버 입문도 매우 빨랐다. 네 살 때 처음으로 페탈 카트 운전대를 잡았고 여섯 살 때는 지역 카트 경주에서 첫 우승을 맛보았다. 87년엔 독일과 유럽 주니어 카트 경주대회 챔피언에 올랐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잠시 정비공이 되기 위해 취직했지만 곧 그만두고 프로 드라이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90년 독일 포뮬러 3(F3) 대회에서 우승한 후에는 벤츠와 후원계약을 하고 스포츠카를 몰기 시작했다.

 슈마허는 F1 데뷔전부터 남달랐다. 무명의 신인이 91년 벨기에 그랑프리에서 7위로 예선전을 통과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베네통으로 적을 옮긴 이듬해에는 F1 첫 우승을 거뒀다. 베네통 시절에도 2번의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슈마허의 본격적인 전성기는 97년 페라리로 이적하면서 시작됐다. 페라리와 함께 5번의 종합우승을 거뒀다. 5년 연속 F1 종합우승(2000∼2004년)을 했으며, 2004년엔 한 시즌 최다 우승(13승)이라는 이정표도 세웠다.

 빛나는 실력에 비해 슈마허의 스포츠맨 정신은 자주 논란을 빚었다. 2006년 모나코 그랑프리 예선전에선 라이벌이었던 페르난도 알론소의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고의로 서킷 끝 부분에 차를 세웠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 자신의 차를 추월하려는 경쟁자를 막다가 둘 다 탈락한 경우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 하나의 생각(승리)밖에 못하는 것이 슈마허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6년 선수생활 정점에서 화려하게 은퇴하고 페라리 자문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듯했다. 하지만 슈마허의 질주 본능은 쉽게 잠들지 않았다. 2010년 메르세데스와 계약하고 10년 더 어린 후배들과 다시 경주장을 달렸 지만 예전 같은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3년 동안 단 1번 우승하고 지난해 다시 은퇴를 선언했다. 슈마허는 두 번째 은퇴를 하며 “ 즐거웠다. 예전처럼 성과가 좋진 않았지만 인생에 대해선 더 많이 배웠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어렵고 유익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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