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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EC 겨냥한 닉슨 조처|한국 등 자원 약소국 협살|미국 농산물 및 고철 금수의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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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전 후 자유 무역의 기수 노릇을 해온 미국이 농산물 및 고철의 금수 조처를 단행한 것도 또 그 동안 미국의 수입 문호 개방 호소에 그 동안 외면해온 일본과 EC가 미국에 대해 수출 증가를 강청 하고 있는 것도 확실히 「아이러니」하다. 이젠 칼자루를 미국이 쥔 것이다. 또 세계 최대의 자원 수출국인 미국이 실력 행사를 하면 어느 정도 가공스러운가를 세계가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실력 행사는 무차별적인 것이기 때문에 한국 등과 같이 자원을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나라들로선 치명적인 타격인 것이다.
이번 미국의 농산물 및 고철의 금수 조처는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명분 즉 「인플레」 억제 이상의 이유를 안고 있다.
그 동안 미국은 「달러」화의 신인 회복은 비단 미국의 국내적인 문제가 아니라 세계 공동의 문제이니 각국이 이에 협조해 주도록 요청해왔다.
과잉 「달러」의 처리나 국제 통화 및 통상 체제의 전면적인 개혁 주장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특히 EC 및 일본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렇다면 미국으로선 또 한번의 실력 행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닉슨」은 판단한 것 같다. 9월의 「나이로비」 IMF 총회와 「가트」 동경 총회를 앞두고 있으므로 「타이밍」도 좋다.
사실 미국의 「인플레」는 어떤 극한책을 안 쓸 수 없도록 심각하다.
6월의 도매 물가 상승률은 2·4%나 되어 2차 대전 후의 「피크」였던 51년l월의 2·5%에 육박했다.,
폭발적인 경기 상승을 타고 확대된 수요는 미국 자원에 몰리고 있다.
이 위에 세계적인 흉작은 농산물 매점 사태까지 빚고 있다.
미국의 물가 상승율은 71년에 3·2%, 72년에 4·6%에 머물렀으나 금년 들어선 1월중에1·3%, 2월에 1·9%, 3월에 2·2%, 4월에 0·8%, 5월에 2·1%나 올랐다.
초과 수요를 누르기 위하여 초 금융 긴축을 강행하고 가격 동결이라는 직접 통제 수단까지 동원했으나 「인플레·무드」는 진정될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닉슨」으로선 마지막 수단인 수출 규제 조처까지 단행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수출 규제가 미국의 「인플레」 진정에 도움은 되겠지만 과연 미국이 고철 및 농산물의 무차별 수출 규제를 안 할 수 없을 만큼 자원 핍박이 절박하느냐엔 의문이 있다.
오히려 이번 조처가 국제 수지 개선 협상을 겨냥한 사전 포석이며 「인플레」 억제의 심리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의 금수 발표가 있자 농산물 가격은 벌써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인플레」억제는 바로 국제 수지 개선과 직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인플레의 진정은 국제 경쟁력의 강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 아울러 미국제 수지의 적자는 특히 일본과 EC가 수입 문호를 덜 개방하는데도 큰 원인이 있는 만큼 이번 금수조처를 수입 문호 개방 확대의 협상 무기로 삼을 가능성이 많다. 미국으로선 자위적 실력 행사를 하면 세계에 어떤 가공할만한 타격이 가며 또 앞으로 국제 무역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선 미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행동으로써 보여준 셈이다. 따라서 「닉슨」의 금수해제는 앞으로 일본·EC제국의 협조 여하에 따라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다.
세계의 반응을 보고 「닉슨」은 웃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국끼리의 실력 싸움에 한국과 같은 못 가진 나라들이 어떻게 협살 되고 있는가는 전연 고려치 않고 있는 것 같다. <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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