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도 상반기 출판계 결산외|형만의 활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73년 상반기의 출판계는 출판물 발행 종 수도 엄청나게 증가했고 출판사도 늘어났으며 또한 서점도 불어났다. 이렇게 외형상으로 볼 때 올 상반기의 출판계는 활발한 듯 하지만 실제 경기는 결코 지난해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정체 상태였다. 대한 출판 문화 협회의 납본에 의한 올 상반기의 출판물 발행 종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9·8% 증가된 3천4백57종이었다. 71년 한 햇 동안 발행된 종 수 (2천9백17종) 보다도 훨씬 많은 것이다. 물론 지난해보다 납본이 강화되어 통계 숫자가 훨씬 불어나기도 했겠지만 해마다 출판물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같은 출판물의 증가는 대체로 불황 타개를 위한 노력의 하나로 실명되고 있으며 올해는 특히 3월말까지는 의외로 경기가 좋아 4월부터 계속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지 않았나 풀이 되고 있다.
또 출판사는 6월말까지 1백10개 출판사가 새로 생겼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63개보다 배에 가깝게 늘어났다. 출판사들이 계속 쓰러지고 부실 출판사들이 정리되고 있는데도 새 출판사가 늘어난다는 것은 현재의 출판 경기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앞으로 호전될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해석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책이 팔리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중에서도 독자의 기호에 맞는 좋은 책을 적시에 내기만 하면 성공하는 예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신생 출판사들은 각기 그들 나름의 자신을 가지고 출발하는 것이다.
해마다 줄어들기만 하던 서점들이 올해 들어 부쩍 늘어난 것은 특히 반가운 일의 하나다. 지금까지 인구 비례로 따진다면 서점이 엄청나게 적었었는데 지난해부터 조금씩 늘기 시작, 올해 서울의 경우 50개 이상의 서점이 새로 생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서점은 독자들이 책을 사고 싶을 때 가까운 곳에서 쉽게 살 수 있도록 지역적으로 분산돼야 하며 네거리마다 서점이 하나씩 있을 만큼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올해 늘어난 서점들은 도심지가 3, 4개뿐이고 대부분이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 서적상들은 서점이 늘었다고 해서 경기가 좋아진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한번 서점을 하던 사람들은 문을 닫았다가도 전업하기가 어려워 다시 문을 여는 경우가 많으며 올해 이상하게 서점이 는 것은 학교에 직접 납품하던 업자들이 지난 학기초부터 그 길이 막히자 서점으로 업종을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출판물의 경향은 두드러진 특색이 없이 여전히 대형의 전집물과 단행본, 또는 문고본이 공존하는 상태였다.
전집물은 더욱 대형화·「칼라」화로 호화롭게 되어가고 문고본은 지난해 「붐」과는 달리 침체한 편이었다.
문고 발행이 국민 독서화 운동과 출판계 불황 타개의 돌파구로 지난해 그처럼 각광을 받았다가 바로 다음해에 저조해 졌다는 것은 그러한 장기적 안목과 사명감을 가진 출판사가 얼마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출판사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현재 문고를 계속 내는 출판사는 을서문화사·서문당·탐구당·현암사 등 손꼽을 정도. 그밖에는 남들이 문고를 내니까 냈다가 수지가 맞지 않자 중단했거나 또는 처음부터 목적이 달라 문고를 전집물의 축소만으로 한꺼번에 내어버리고 그만둔 경우다.
또 지난해부터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출판물의 정가 판매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일부 출판사들은 정가와 보급 특가에 차이를 둠으로써 독자를 기만하고 있으며 일류 출판사들도 책이 나가지 않으면 동대문시장에「덤핑」하는 것이 예사인 것이다.
출판물의 유통 질서가 서점을 통한 정상적인 길로 발전되지 못하고 월부 외판이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발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서점은 물론 출판사도 별다른 이익을 얻지 못하고 외판 업자만 배를 불려왔다.
더우기 외판 업자들은 자기네들의 이익을 위해 독자의 기호를 조작, 더 대형이고 호화롭고 값비싼 전집물을 요구함으로써 오히려 독자들이 책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월부 전집물을 발간하는 20개의 출판사가 최근 한국 도서 유통 협의회를 구성한 것도 바로 이러한 외판 업자들의 횡포를 막기 위한 것이다.
이 협의회는 현재의 실정으로는 외판이 출판물의 중요한 유통 과정의 하나이므로 외판을 하더라도 터무니없이 부피만 크게 해서 부당한 가격을 매기지 않게끔 자율적으로 규제하고, 나아가 정가제의 실시를 통한 유통질서의 확립을 원대한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영섭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