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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추락하자 급해진 아베, 미국 뒤통수 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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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의 위패를 참배하기 위해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신사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도쿄 AP=뉴시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미국’이라는 집토끼를 잃고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자신의 꿈을 망치는 자충수였다는 평가다. 일본 내부적으로 우익세력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거뒀을지 몰라도 국제사회로부터 의심의 눈초리까지 불러왔다. 특히 한·미·일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동북아 전략이 헝클어질 상황이 벌어지면서 미국에서는 ‘일본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도 나온다. 로버트 퍼트남(Robert D. Putnam)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양면게임(Two Level Game)이론’에서 외교협상 시 정책결정자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국민이 정책을 납득할 수 있는 범위와 상대 국가가 정책을 용인할 수 있는 범위의 교집합에서 외교정책을 결정해야 하지만 아베는 대내적 게임에 눈을 돌리다 대외적 게임을 뒤엎은 셈이 됐다.

 전문가들은 아베 총리의 돌발적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세 가지 이유로 분석한다. 첫째는 아베 개인의 소신, 둘째는 지지율 하락에 따른 보수세력 결집의 목적, 셋째는 미국과의 관계가 공고하다는 자신감이다.

 아베 총리의 경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전범 숭배로 오해해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12월 26일 담화문)는 등의 발언으로 일본의 군국주의 과거를 부정해 왔다.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아베 입장에서는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A급 전범 용의자이기에 ‘야스쿠니=전범 합사’라는 등식을 인정할 수 없었다”며 “태생적인 부분이 작용해 일관성 있게 야스쿠니 참배를 시도해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세력 결집의 필요성은 지지율이 말해주고 있다. 아베 총리는 특정비밀보호법 제정을 강행하며 70%에 달하던 지지율이 40%대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4월부터 소비세를 8%대로 올리기로 결정하며 국내 불만이 높아졌다. 국립외교원 조양현 교수는 “아베가 그동안 현실주의 노선과 보수우익을 배려하는 우익 퍼포먼스로 균형을 잡아왔지만, 경제와 내각지지율에 자신감이 떨어지며 국내정치에 올인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에 대한 과신은 지난 10월 양국 외교·국방장관 회담(2+2회담)에서 양국 군사협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한 후 가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미사일방어(MD)체제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에서 미국 편에 섰고,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확대 국면에서도 미국과 공조했다. 과거 한국이나 중국과 역사·영토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이 “개별 국가 간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며 방임정책을 편 것도 작용한 듯하다. 하지만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미국 입장에선 한·일관계 회복이 늦춰지고 중국과 일본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이 동북아 전략지형상 곤란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한·미·일 3각공조가 불안해지는 것을 좌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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