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모스크바」에서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물론 연극이었다. 나는 냉전 이후 처음으로 소련 땅을 밟은 한국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국제연극회의에 참석한 연극인이었기 때문이다.
소련의 연극은 그곳 국민들의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어 있는 듯 했으며 어느 예술분야보다도 활발한 것 같았다. 전국에 극장이 3백70개 있고 별도로 어린이 극장만 1백50개있으며 직업극단이 5백여 개나 된다고 했다. 「모스크바」에 있는 극장만도 30개라고 했다.
<새 경향 시각적 연극 도입>
내가 「모스크바」에 머무른, 6박7일 동안 볼 수 있었던 무대 공연물은 모두 6편이었다. 이중 「볼쇼이·발레」와「뮤지컬」『투란드트』를 빼면 연단은 4편이었다. 「말리」극장에서 본 「톨스토이」원작의『「표트르·이바노비치」황제』,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본 『강철을 만드는 사람들』, 「타캉카」극장에서 본『햄리트』, 「소브레메디크」극장에서 본 『「발렌틴」과 「발렌티나」등.
내가 소련의 연극을 본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7, 8년 전「뉴요크」에 온「모스크바」예술극단의 『「크렘린」굴뚝』『벚꽃동산』『3자매』『빈민굴』등을 본 일이 있었다. 그 때의 느낌은 소련의 연극이 완전히 「리얼리즘」연극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번에 다시 본 소련연극에서도 그 「리얼리즘」은 재확인되었지만 한가지 새로운 경향 즉 화술중심의 연극에서 시각적인 연극이 도입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시각적인 연극은 아직도 소수인 것 같았으며 더구나 「아방가르드」「언더그라운드」또는 실험연극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점은 지금까지「러시아」사람들이 세계 연극 사에 있어서 전위적인 역할을 해왔던 것에 비하면 「아이러니컬」한 것이기도 하다.
서구의 전위 또는 혁신적인 연극은 개성이 뚜렷한 몇몇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보편성이 없고 거기에 공감할 수 있는 관객은 특수한 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소련은 모든 것이 「매스」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이며 연극도 전 대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몇몇만의 새로운 시도란 있을 수 없는 것 같이 느껴졌다. 예술의 모순성이란 개인주의 사회에서나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어디서나 존재하는 모양이었다.새>
<현대적 감각 『햄리트』공연>
단 1주일간의 여행자로서 4개의 무대만 보고 소련의 연극을 말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련의 연극은 비록 세계연극사조로 보아서는 뒤떨어지는 「리얼리즘」연극을 아직도 추구하고있다 할지라도 세계적 수준에 올라있으며 특히 연기는 뛰어나다고 확언할 수 있겠다.
그 이유는 근대연극연기의 기초를 이룬 「스타니슬라브스키」의 내면적 연기론이 탄생된 본 고장으로서 오랫동안 이 하나의 방법론만을 정착시켜 이제는 익을 대로 익었기 때문이다.
「스타니슬라프스키」가 「단젠크」와 함께 창립한 「모스크바」예술극장이 아직 옛 모습 그대로 남아 기념되고 있다는 것은 「스타니슬라프스키」가 「러시아」연극에 끼친 영향과 공적을 봐서도 당연히 그렇게 할만한 것이라고 느껴졌다.
내가 본 4편의 연극 중에서는 「타강카」극장에서 본 『햄리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세계 연극사조적인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장 현대적인 것이었고 감각적이면서도 무게가 있고 안정된 것이었다
특히 이 작품은 내가 2년 전에 연출한 『알라망』과 비슷하게 그들의 영상을 이용하는 등의 시각적 미학을 추구한 점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젊은「그룹」의 극장이라는「소브레메니크」극장에서 본 『 「발렌틴」과 「발렌티나」』도 내용과 형식은 그대로 고전적이었다. 다만 미술은 무대에 자전거를 거꾸로 매달아놓고 「벨」로 이용하는 등의 전위적인 취향을 약간 엿볼 수 있었다. 「말리」극장에서 본 『「표트로·이바노비키」황제』는 전에도 소개한바 있는「인민배우」「이노켄티·스모크투느프스키」의 명연기도 명연기려니와 그 인기가 상장을 초월하고있어 인상적이었다.현대적>
<무대전환·조명 뛰어나>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본『강철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떻게 기술적으로 요란을 띠는지 연극자체는 아예 보이질 않았다.
2시간 동안의 연극에 무대가 35번이나 전환될 정도였는데 특히 조명은 아주 뛰어났다.
한 예로 용광로 장면에서 인부가 석탄을 넣을 때 불꽃이 확 일어나는 것까지 조명으로 처리했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연기를 뿜어내는 「포그·머쉰」이 공교롭게도 우리가『초분』공연 때 썼던 것과 똑같은 기계였다는 것이다.
하루는「고르키」가의「모스크바」예술극장에 가서 공연이 아닌 「워크숍」비슷한 「리허설」을 볼 수 있었다. 20대의 연출가가 완전히 작품을 만들어 놓은 다음 1급의 노 연출가가 평가를 해가면서 손질을 하고 있었다. 연극이「그룹」예술이긴 하지만 연출 한 분야만을 집단으로 작업하고 있는 것이었다.
서구에서는 각 개인의 개성이 다르고 경향이 달라 집단작업이란 과거부터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련사회에서는 이미 오래된 것 같았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에, 즉 그들 나름의 공동의 신화를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았다. 예술이 공감을 주는 것은 거기에 내포되어있는 것이 관객의 것과 일치할 때이다. 연극은 그 사회 공동의 신화를 추구하는 것이며 또 예술의 창조에는 자유가 필요하다고 할 때 소련의 연극은 신화가 있는 대신 창작의 자유가 없으며 서구의 연극은 자유가 있는 반면 공동의 신화가 없는 것이 대조적이라고 느껴졌다. <계속>계속>무대전환·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