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첫 소련입국 한국인 유덕형씨 기행문|유덕형(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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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스크바」에 머무른 세쨋날 나는 다른 대표들과 함께 「모스크바」시내관광에 나섰다. 관광「버스」로 시내의 명소들을 쭉 돌아보았다.
「버스」에 탄 일행은 대표단이 나까지 5명, 그리고는 운전사와 안내양이 그 전부였다. 주최측에선 매일 오후 여러 관광「코스」를 주선해주는 까닭에 모두들 다른 「코스」를 택한 모양이었다.

<외국대표 태운 버스 고장>
「버스」가 텅 비어 아주 가족적인 분위기로 「모스크바」대학·「체흡」생가 등을 두루 구경했다. 안내양은 우리 다섯 사람을 앉혀 놓고 열심히 「마이크」로 관광지를 설명했고 명소에 도착해서는 잠시 내리기도 했다.
나는 「호텔」에서 산 안내책자를 보면서 조금이라도 미심한 데가 있으면 꼬치꼬치 안내양에게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안내양은 자기 밑천이 다 나온다는 뜻인지 웃으면서 책은 보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는 미안한 듯이 책하고는 숫자가 좀 틀릴지 모른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모스크바·호텔」을 출발해서 얼마가지도 않아 「버스」가 갑자기 서버리는 것이었다. 「엔진」이 멎은 것이다.

<질문공세에 안내양 딴전>
그것도 한번만이 아니고 한바퀴 돌아오는데 두 번씩이나 「엔진」이 꺼지는 것이었다.
운전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퍽 신경이 쓰이는 기색으로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안내양도 당황하는 게 역연했고 더구나 시간이 지체됨에 따라 관광「코스」에 대한 안내방송마저 할말이 더 없어지자 무안한 듯 미소만 지어 보였다.
이 광경은 우리가 보기에도 우습고 민망했다. 국제회의에 참석한 외국대표들을 태운 관광「버스」요, 험한 길도 아닌 시내이기에 더욱 딱했다. 우리가 탄 차만 그런가 했더니 「보니트」를 들어올리고 고장난 듯 서있는 차들이 예사롭게 눈에 띄었다.

<지저분한 곳 찍자 항의도>
가다가 시동이 꺼질 정도인 고물차도 그대로 굴리는 이곳과 형만 바뀌어도 새차로 갈아 치워버리는 서구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다. 한참씩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물자의 검약과 통제 경제라는 게 이런 것인가 자꾸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모스크바」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겉 핥기로나마 차를 타고 돌아본 거리의 인상은 모르긴 해도 서구의 어느 도시보다도 깨끗했다. 말끔히 정돈돼 있다는 편이 알맞는 표현이겠다. 물론 좀 지저분한 곳도 없지 않아 내가 「카메라」를 갖다댔더니 안내양은 『왜 나쁜 것만 찍으려고 그래요?』하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그래야 아름다운 것이 더 돋보일게 아니냐』고 익살을 부려 응대했다.
붉은 광장에 다 와서 「버스」가 두 번째 고장났을 때는 무려 30여분이나 지체했다. 「이스라엘」의 두 대표는 아예 「쇼핑」간다면서 떠나버렸고 「필리핀」대표와 나, 그리고 또한 사람만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식구가 단출해지자 우리는 「버스」를 내려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동승객으로서의 사사로운 얘기들을 나눌 기회를 가졌고 또 기념촬영도 했다. 틀에 박힌 실명만 외어대던 안내양도 한결 태도가 부드러워졌고 그래서 우리 틈에 끼여 좀 더 인간적인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 점 「버스」고장은 오히려 다행인지도 몰랐다.
안내양에게 내가 물어본 것은 소련의 주택문제였다. 「버스」를 타고 다녀봐도 「아파트」들이 많은데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으며 새것도 있고 낡은 것도 있어 층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고 나쁜 집이 있으면 전부 좋은 집에 살고 싶은게 인지상정일텐데 그 결정은 국가가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수입 많은 사람이 좋은 집을 차지하게 되는 거냐…이런 등등의 자질구레한 얘기들이었다. 안내양은 대답 대신 생긋이 웃으며 딴전을 부렸다.

<도시주택은 모두 아파트>
단지 수입의 4%를 집세로 내는데 집 크기는 가족 수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어린애가 셋인 5인 가족이 방 3개 짜리 「아파트」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매년 「아파트」를 새로 짓지만 주택이 완전히 해결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소련의 도시주택은 모두가 국영의 「아파트」인데 돈 있는 사람은 독립주택을 지을 수도 있는 모양이었고 정치가나 예술가는 별장도 있는 듯 했다.

<돈 많으면 독립주택 지어>
소련에 관한 어떤 책에는 마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다. 「스탈린」의 「미이라」가 「레닌」의 묘에서 추방됐을 때 「모스크바」에 떠도는 풍문을 옮겨놓은 귀절이다. 「레닌」이 하루아침 눈을 떠보니 옆에 있던 「스탈린」이 보이지 않았다. 「레닌」이 말하기를 『오랫동안 그 친구와 동거생활을 해왔지만 이제야 좀 다리를 쭉 뻗고 잘 수 있게 됐구나』했다는 것이다.
이건 한갓 우스개 얘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소련의 권력구조에 대한 풍자와 특히 소련사회의 주택난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 해석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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