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신고의 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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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간인의 진정서나 신고가 관공서에 접수된 뒤 그 처리가 흐지부지되고 있어 민원을 사고 있다.
봉천동의 한 여인숙주인은 소음공해 때문에 16번이나 진정하였으나 한 두 번 현장검증이 있었을 뿐 소음공장은 여전히 가동하고 있다고 한다. 또 독살여인사건의 신고처리가 늑장을 부려 살인사건을 예방하지 못하는 「미스」를 저질렀다고도 한다. 이 밖에도 집단폭행사건이 일어난 경우, 형사고소를 하면 범인을 도피시킨 뒤 피고인소재불명으로 흐지부지 하는 일조차 있다고 한다.
관공서마다 업무량이 과다하기 때문에 민원신고를 처리할 여력이 부족한 것은 틀림없다. 공무원들이 부족한 일손과 모자라는 예산 때문에 과로에 지쳐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민원신고를 조속히 처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진정이나 신고를 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정 때문이다.
사실이지 웬만한 사람은 경찰에 대한 신고나 관공서에 대한 진정을 꺼리게 된다. 남을 모함하기 위하여 투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어 무기명으로 된 투서나 진정서는 처리하지 말라고 총리가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기명으로 공해업소를 고발하고, 깡패소탕을 진정하고 범죄신고를 하게 되는데 기명으로 한 경우에는 곧 진정인이 알려져 보복을 받게 되기 일상이다. 진정인들이 보복이 있을 것을 각오하면서도 기명으로 진정해야하는 그 안타까움을 공무원들도 알아주어야 할 것이다.
민원사항을 진정하는 사람들은 대개 약자이기 일쑤이다. 약한 사람들이 일루의 희망으로 요로에 진정하거나 탄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공서에서는 이들의 요구사항에 대하여 신속한 처리를 해주어야만 할 것이다. 청원법은 『청원을 수리하여 이를 성실·공정·신속히 심사처리하고 그 결과를 청원인에게 통지하여야한다』고 못박고 있으나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 청원인들은 실망하게 되고, 따라서 관을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근자에는 관공서마다 민원담당관을 두고, 또 민원신고전화까지 가설하고 있다. 이 민원신고전화는 관서장의 비서실직통이어서 신문고와 같은 기능을 다 하고 있다. 공무원의 불법행위가 있다든가, 억울한 사실이 있는 경우 요식행위인 청원절차를 밟지 않고 직접 전화로 신고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한 제도이다. 그러나 이 민원신고전화가 어느 정도 이용되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효용이 있는지 극히 의심스럽다. 각 관공서의 장은 이 민원신고전화를 통한 신고와 그 처리가 잘되고 있는지 수시로 감사하여야 할 것이요, 이용이 잘 안된 경우에는 이용하도록 계몽하여야만 할 것이다.
중앙행정관서와 청와대에는 민원비서실이 있어 그래도 신속한 구제가 잘되고 있으나 국회에 대한 청원의 심사는 부지하세월로 처리가 안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8대 국회에서는 이런 폐단을 없애고 청원처리를 신속히 하기 위하여 청원국의 창설까지 논의되었던바 9대 국회에서는 그것이 실현될 것인지 궁금하다. 주권자인 국민이 국정에 대하여 참여할 수 있는 것은 국민투표와 선거이외에는 청원 진정을 통한 길밖에 없다. 각 관공서는 국민의 직접참정의 한 방법인 청원이나 신고의 처리에 신속을 기해주어야 할 것이다. 『때늦은 정의는 부정의』라는 법언이 있거니와, 청원처리에 있어서도 이것은 진리이다. 또 시민들은 청원하였다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거나 불이익을 강요당하지 않아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피해의 구제나 공무원의 비위시정을 청원하여 민주정치의 발전에 참여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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