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변인 직접 나서 "분노 금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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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6일 청와대에서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당초 ‘장성택 처형’후 우리 군의 안보태세 점검을 위한 회의였지만 오전 10시30분쯤 일본이 주일 한국대사관으로 참배 사실을 통보하며 논의의 초점이 신사 참배 대응방안으로 바뀌었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유관 부처 장·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오전 11시부터 한 시간 동안 열린 이날 회의에서 정부 대변인 명의로 규탄 성명 발표 방침을 정하고 향후 한·일 외교 방향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 후 정부 대변인인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비난 성명을 냈다. 유 장관은 “아베 총리가 그간 이웃 나라와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전범들을 합사하고 있는 야스쿠니를 참배했다”고 비판했다.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외교부 차원의 성명이 아닌 정부 대변인 성명이 발표된 건 이례적이다.

 유 장관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한·일 관계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협력을 근본부터 훼손시키는 시대착오적 행위”라고 강조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주도했던 일본 육군상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와 조선총독으로 수탈을 자행한 고이소 구니아키(小磯國昭) 등 1급 전쟁 범죄자들이 합사돼 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진주만 공습의 주범인 도조 히데키까지 거론한 건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유 장관은 또 “아베 총리가 소위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이름 아래 국제사회에 기여하겠다고 하나 이런 잘못된 역사관을 갖고 평화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구라이 다카시(倉井高志) 주한 일본대사관 대사대리(총괄공사)를 불러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했다. 김규현 외교부 제1차관은 구라이 총괄공사에게 “아베 총리의 참배로 인해 발생하는 어떠한 결과에 대해서도 그 모든 책임은 일본에 있는 것을 분명히 한다”고 경고했다. 김 차관은 “대화를 원해 온 아베 총리의 태도가 진정한 것인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며 “오늘 참배 후 발표한 아베 총리의 담화 내용도 진정성이 결여된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일본 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통보 직후 이병기 주일 한국대사가 일본 정부에 즉각 항의했다. 이 대사는 이날 저녁 일본 외무성을 방문해 사이키 아키타카(齊木昭隆) 외무성 사무차관과 20여 분간 면담을 하고 참배에 항의하는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정부는 추후 이 대사의 본국 소환을 비롯해 다음 달로 예정됐던 한·일 차관급 전략대화를 취소하는 방안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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