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는 시대착오적 스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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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기어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2기(期) 내각 출범 1주년 기념일인 어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를 전격 참배한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에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일본이 일으킨 각종 전쟁에서 숨진 246만6000명이 합사돼 있다. ‘적극적 평화주의’를 기치로 세계평화에 기여하겠다는 그가 야스쿠니를 찾아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린 것은 시대착오적 스캔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참배를 마친 후 아베는 “일본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희생한 영령에게 존숭(尊崇)의 뜻을 표했다”며 “중국·한국민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다”고 말했다. 사리를 모르는 뻔뻔한 변명이다. 일본의 침략 전쟁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주변국 국민의 눈에는 군국주의와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반(反)역사적 폭거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웃 국민의 마음을 털끝만큼이라도 헤아렸다면 소신을 접고 참배를 자제했어야 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최소한의 도덕적 규범에서 보더라도 도저히 해서는 안 될 파렴치한 행위를 한 것이다.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반대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함으로써 아베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극우 강경론자임을 만천하에 고백한 꼴이 됐다. 높은 지지율에 취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잘못된 선택이 몰고 올 역풍을 생각한다면 제 발등을 찍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이례적인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극심한 분노를 표출했다. 중국 정부는 역사의 정의와 인류의 양식에 도전한 행위라고 규탄했다. 주변국과의 관계는 악화될 게 뻔하다. 정상회담조차 못 여는 비정상적 상황이 지속될 것이고, 과거사와 영토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심화될 것이다. 모든 책임은 시대착오적 선택을 한 아베 총리 자신에게 있다.

 아베는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내세워 군사대국화 행보를 가속화해 왔다.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워 집단적 자위권 확보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주변국들은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전제되지 않은 적극적 평화주의의 진정성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 왔다. 아베는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함으로써 적극적 평화주의의 허구성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다. 군국주의적 침략을 미화하면서 평화를 외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아베의 잘못된 선택으로 동북아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한·중·일 협력은 물론이고, 한·미·일 3각 동맹도 요원한 상황이 됐다. 미국의 동북아 안보 구상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서로 손가락질만 하며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 진정으로 동북아의 미래를 생각하는 양식 있는 시민들이 나서서라도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