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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1주일』(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소련의 연극이나 극장에 관해서 한가지 잊을 수 없는 인상은 내가 「모스크바」에 7일간 체재하는 동안 열심히 찾아다녔던 극장이 그때마다 관객들로 빽빽이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이다.

<드라머 극장 시내에 30개>
「드라머」극장은 「모스크바」시내에만 근 30군데, 전국적으로는 3백70여개를 헤아린다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많은 극장들이 언제나 관객들로 대만원을 이룬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대관절 소련에서는 연극이 왜 이렇게 번성하는가? 그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서방세계에서처럼 연극 이외에 경쟁적이고 상업적인 오락물의 종류나 오락의 기회가 비교적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이다.
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연극에 대한 정책상의 평가나 고려도해서 연극활동이 국내적으로 지원되고 심지어는 기도되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될 수 있다.

<러시아신화, 활력소 역할>
그러나 그보다도 중요한 사실은 이곳 사람들에게 전해오는 신화(myth)가 연극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큰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념적인 내용을 빼어 놓는다면 연극계 그 밖의 여러 가지 분야에 걸쳐 음미할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상 우리가 항상 의식하고 있건 말건 인간의 모든 사회적 활동에서 신화라는 것이 큰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화라는 것은, 그것은 어떤 추상적인 이념일수도 있겠다.
소련사람들이 그들의 넓고 넓은 땅덩어리 그 자체에 대해서 가지는 전통적인 신뢰라든가,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나 「크렘린」「푸쉬킨」 등이 「러시아」신화의 일부를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말할 것도 없이 소련사람들의 가장 큰 신화는 공산주의의 신화이다. 또 그것이 이를테면 인위적으로, 대량으로 계획되고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도 뚜렷한 예다.
따라서 현대 소련연극에서 그것이 한결같이 주조를 이루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모스크바」 극장가를 돌아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혁명전의 「러시아」 고전들이나 「러시아」이외의 고전들, 예컨대 「셰익스피어」극들도 눈에 띄게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소위 「스탈린」시대가 막을 닫은 이후에 일어난 새로운 현상인지의 여부를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지하문화 찾아볼 수 없고>
그러나 혁명 후 공산주의적 신화가 사람들의 생활을 전체적으로 규제해 온 소련에서 혁명전의 고전들, 특히 혁명적인 「모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동서고전들이 다시 평가되고 굉장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은 퍽 흥미 있는 현상이었다.
그것이 만일, 벌써 나이 50세를 넘은 붉은 소련의 여러 모에 걸쳐서 젖어든 어떤, 이를테면 갱년기적인 현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면 「유럽」의 한 속담이 과연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속담이란 『시간처럼 더 위대한 의사는 없다』는 것이다.
현지 소련의 극장가에서 이와 같이 고전의 부흥현상이 눈에 띄는데도 전후 서구를 휩쓸어 온 「아방가르드」, 즉 전형적인 작품들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서구에서 흔한 소위 지하문화라는 것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장발족들도 없었다.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됐던 내 머리가 「모스크바」에선 유달리 긴 것처럼 느껴졌다.

<전위예술은 백안시 경향>
문화적인 면에서 얼핏 거의 보수적이거나 청교도적인 분위기마저 느낀 것은 나의 「모스크바」체재가 여러모로 샅샅이 뒤져보고 다니기에는 너무나 짧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전위적인 구실을 흔히 운위해 온 소련에서 전위적인 성격의 문학활동이나 「아방가르드」적 실험이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만일 그것이 있다면 필경 백안시 될 것이고 보면 이는 「패러독시컬」한 일이다.
물론 이런 「아방가르드」적인 실험을 곧장 퇴폐라는 범주 속에 집어넣어 버린다면 소련사람으로서는 이런 사실이 조금도 모순이거나 또는 이상한 일일 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극장가는 꼬마대열 많아>
그것은 우선은 보기 나름이라고 해두는게 좋겠다.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러한 신화의 접촉이 소련에서는 어려서부터 시작되고 어린이들을 일찍부터 극장에 드나들게 하는 것이 소련 연극계의 번창을 가져오는 커다란 원인을 이루고 있다. 선생님을 따라서 극장으로 향하는 꼬마들의 대열은 「모스크바」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거기엔 어린이들을 일찍부터 교육, 교화시킨다는 보다 정책적인 동기의 작용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 이곳 어린이들과 극장간의 거리가 아주 가깝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어린이 극장만도 백50개>
「모스크바」시내만도 「스보드로바」광장 속, 「볼쇼이」극장 가까이 있는 중앙 어린이 극장, 「유노보주리텔라」라고 불리는 젊은이의 극장을 비롯해서 「으브라조프」인형극장 등 어린이 관객을 위한 극장들이 있었고, 전국적으로는 어린이 극장이 1백50개나 있다는 얘기였다.
연극이나 문화의 발전에서 신화나 신화의 교화가 차지하는 역할은 「모스크바」에서 받은 인상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실상 따져보면 그와 같은 사실을 느끼기 위해선 꼭 「모스크바」까지 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지난 2천년동안 「유럽」문명의 원동력을 이룬 「예수」나 십자가의 신화처럼 더 적절한 예는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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