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권 놓고 총격전 … 김정은이 보낸 병사 장성택 측에 참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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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정은의 지시로 장성택이 관할하고 있는 수산부업기지(어장)에 군인들이 출동했다. 군인들은 기지의 관할권을 내놓으라고 장성택 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장성택의 부하들은 장성택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내줄 수 없다고 버텼다. 이 과정에서 양측 간에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북한 군부 입장에서 교전의 결과는 참담했다. 관할권을 접수하러 간 병사들은 야위고,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장성택의 부하들에게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패퇴했다. 이 사실을 보고받은 김정은은 장성택이 장차 자신의 통치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여겼다. 김정은은 더 많은 병사를 다시 보냈고, 마침내 장성택을 굴복시켰다. 그리고 장성택의 핵심 측근 2명을 공개 처형했다. 장성택 처형 사건의 뿌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NYT)가 24일자(현지시간) 1면에 게재한 기사다. NYT는 이 기사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양 측이 올가을 한 차례 무력 충돌을 벌였다”고 전했다. 신문은 첫 충돌이 9월 말에서 10월 초에 발생했으며, 기사의 취재원에 대해선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복수의 한국·미국 정부 당국자들’이라고만 인용했다. 군데군데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23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한 발언들도 소개했다.

 특히 공개 처형된 장성택의 심복 2명(북한 노동당 행정부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에 대해 “소총이 아니라 대공 기관총으로 처형됐다”고 적시했다.

 NYT 기사에 따르면 김정은은 2년 전 정권을 잡은 뒤 장성택에게 외화벌이의 주 소득원인 석탄과 꽃게·조개 등의 관할권을 넘겼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 관할권은 군부가 가지고 있었다. 장성택의 세력은 점점 커져갔고, 군부의 불만도 쌓였다. NYT는 “어느 날 군 부대로 시찰을 간 김정은은 병사들의 영양상태가 나쁜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김정은은 군 심복들에 설득당해 장성택에게 준 석탄·꽃게 등의 관할권을 다시 군에 돌려주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가 양측 간의 총격전으로 번졌고, 장성택 처형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었다.

 장성택 사건과 관련한 NYT의 보도는 지난주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보도와도 일맥상통한다. 김정은의 명령을 받은 군인 150명이 장성택의 부하 40명과 수산부업기지 관할권을 놓고 총격전을 벌였으며, 이게 ‘최고사령관 명령불복죄’에 해당해 장성택이 처형됐다는 것이었다. RFA는 “당시 장성택 사람들이 얼마나 훈련이 잘됐는지 방어대 군인 150명을 간단히 제압하고, 2명을 즉사시켰다”고 전했다. 이 사건은 최용해 군 총정치국장을 통해 김정은에게 보고됐고, 크게 분노한 김정은이 국가안전보위부와 군 보위사령부를 시켜 장성택에 대한 내사에 돌입했다고 RFA는 밝혔다.

 실제로 남재준 원장은 국회 정보위에서 “장성택의 숙청이 내부 권력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게 아니다”며 “다만 권력층의 면종복배(겉으론 복종하고, 속으론 딴마음을 먹음)로 정책 난맥상이 심화되고 내부 균열이 가속화될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성택 처형 뒤 김정은 울었다”=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5일 김정은이 최용해 군 총정치국장 등의 건의에 따라 장성택에 대한 사형 집행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장성택의 사형이 집행된 뒤 닷새 후인 17일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김정일 추모대회에 참석하기 직전까지도 “울고 있었다”고 한다. 요미우리는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은 자신의 손으로 고모부를 죽였다는 데 대해 정신이 불안정한 상태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도쿄=박승희·서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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