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빵집까지 경쟁하듯 문 열고 난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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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부산시 해운대구 구남로의 한 상점. 난방을 하는데 출입문은 아예 달려 있지 않았다. 상당수 다른 가게들도 “문을 닫으면 손님이 오지 않는다”며 문을 열어놨다. [송봉근 기자]

25일 오후 3시 서울 명동성당 부근의 이른바 ‘보세골목’. 거리 양쪽에 늘어선 옷·신발·화장품·액세서리 가게 대부분이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한 골목에서 다음 골목까지 좌우에 들어선 13개 점포 중 10개가 이랬다. 찬 바람이 들어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다른 골목에도 대략 가게 10곳 중 8곳꼴로 문을 열어젖힌 상태였다.

가게 안은 외투를 입고 있기엔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웠다. 문을 열고 난방을 펑펑 틀어놓은 것이다. 화장품 가게 남성 매니저 A씨(29)는 “문을 열어놔야 손님들이 기웃거리다 들어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명동거리를 찾은 이탈리아인 미안 안나치아라(23·여)는 “겨울에 문을 열고 장사하는 것은 고향 베니스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11시 부산시 해운대의 번화가인 구남로. 10곳 휴대전화 대리점 중 5곳이 문을 열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등 이곳 역시 상당수 점포가 문을 연 채였다. 이곳에서 4년째 옷가게를 운영하는 B씨(54)는 “문을 닫아놓으면 매출이 30% 이상 떨어지는데 어떻게 닫아놓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여름철 문을 열어놓고 에어컨을 틀어대는 ‘개문냉방(開門冷房)’만 문제가 아니다. 이젠 ‘개문난방’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여름이 아니라 겨울철이 전력 수요가 한 해 최고치에 이르는 시기여서 그렇다. 전기 난방이 늘면서 전력 수요 최고치는 해마다 1월에 기록되고 있다. 게다가 지금은 원전 23기 가운데 6기가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등의 이유로 가동을 멈춘 상태다. 전력 공급이 여의치 않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16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개문난방을 금지한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전국 거리 곳곳에서는 “장사에 타격을 입는다”며 문을 열고 난방기기 온도를 확 높여놓은 채 장사를 하는 실정이다.

25일 오전 개문난방을 한 인천시 구월동 로데오거리의 한 이동통신 대리점은 온풍기 온도를 섭씨 26도로 맞춰놨다. 겨울철 권장 실내온도인 20도보다 6도 높다. “문을 닫아놓으면 손님 발길이 뚝 끊긴다”는 게 매장 점원의 설명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후 8시 경기도 수원역 인근 번화가인 향교로에서는 빵집까지 문을 열어놓고 점원이 문 밖에서 행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사가라”고 외쳤다.

정부는 일단 올해 말까지를 개문난방 계도 기간으로 정하고, 내년 1월 2일부터는 단속을 한다는 계획이다. 처음 걸리면 경고에 그치지만 두 번째 걸리면 50만원, 세 번째는 100만원, 다섯 번째는 300만원의 과태료를 물린다.

상인들은 이런 정부 방침에 반발한다. 인천시 로데오거리에서 화장품점을 운영하는 C씨(31·여)는 이렇게 말했다. “전력난 걱정을 하게 만든 건 원전 불량 부품을 주고받은 업체들 아니냐. 우리도 비싼 전기요금 생각하면 문을 열어놓고 싶지 않다. 하지만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데 어쩌란 말인가. 왜 문제는 ‘원전 마피아’란 사람들이 저질러 놓고 우리가 대가를 치러야 하느냐.”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 단속 담당들도 이런 자영업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과태료를 물리기는 쉽지 않다. 경기도 에너지정책을 담당하는 한성기 기업지원2과장은 “한정된 인원으로 과태료 부과를 위한 증거를 잡고 상인들과 다퉈가며 단속을 하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라며 “강압적인 단속보다는 개문난방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도록 유도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부산=위성욱 기자, 인천·수원=임명수 기자 이진우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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