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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서 수도화 계획을 표명 브란트,관계부처 협조당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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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 서 독간의 기본조약 체결 후 서독의 지도자들은 이제야「본」을 서독 연방 공화국의 수도로 발전 시켜야 할때가 왔다고 생각하고있다.
동,서독 조약과 4대국의 「베를린」 협정은 베를린이 가까운 장래에 통일된 독일의 수도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최종적으로 포기하도록 했다.
실상「본」을『임시수도』라고 단서를 붙여 말한지는 오래되었지만 「라인」강변에 정부청사를 설치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어져 오다가 요즈음에 이르러 관계자들은 새 정부청사의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이 계획은 독일정치의 새로운 중심부화를 노리는 동 「베를린」 이라는 경쟁자 때문에 더욱 현실성을 띄고 체계화하고 있다.
서독의 임시수도로서의「본」 의 역할은 전후환 법 초안 작업을 위한 제국 국회를 「본」에서 소집하기로 결정될 때부터 시작됐다. 이 제헌 국회에서는 정부의 주요기관을 「본」에 자리잡도록 49년에 결의했다. 이 결의에 따라 마련된 상·하원의 건물이 완공되어 지금까지 쓰이고있다.
그러면서도 「본」이 수도로서의 면목을 지금껏 갖추지 못한 점은 장래에 있을 통독을 염두에 두고 임시 수도로 있다가 미구에「베틀린」으로 천도한다·는 생각과 독일정부의 중심부로 결정된 우연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56년에 들어서「본」에서의 연방 정부의 모든 건설 계획을 충만 시키고서 「베를린」에 페허화 한대로 내버려 두었던 옛의 소당「라이히스·타크」건물 재건공사가 진행되었으나 동서 진영간의 긴장 완화추세와 독일의 정치풍토가 새로운 전환단계로 접어들 음에 따라 작년이후로는 소련과의 대립을 표하기 위해 종래까지 「베를린」 에서 치르던 연방 상·하원합동회의, 대통령 취임식 등 의례적인 행사를 중지하고 있다.
73년1월 정부의 연두교서가운데 서독의 수도건설에 관한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브란트」수장은「본」시가 서독수도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관계부처가 협조하여 발전계획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정부의 「본」 에 대한 공식태도를 밝혔다.
이는 정년부터 실제로는『임시』 라는 단서를 붙이던 관례가 없어지고 나서 정부가 「본」을 수도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공식적인 태도를 처음 밝힌 것 이었다.그러나 이전에 이미 「본」 시당국은 점부의 태도 천명 이전인 72년에 확정된 도시 계획에 수상관저와 의회 의사당정부 각 부처의 건축을 포함시키고 있었다.
현재 수상관저는 1858년부터 1860년 사이에 건축된「팔례·샤음부르크」라고 불리는 군주시대 양식의 별장이 사용되고 있으나 정부당국은 현관저 바로 옆에 새로 지을 계획으로 있다.
정부 각 부처도 1949년 「벨기에」 군이 주둔하던 병영을 중심으로 필요할 때마다 사무실을 건물의 대축이나 개조로 메워 갔으나 각부서가 분산되는 불편을 심하게 하고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을 검토한 끝에 「라인」 강변에 각 기관을 집약 시키기 위한 계획에 따르면 우선 「라인」 강변에 일종의 교두를 건설하고 건너편에 맞은쪽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도록 되어있다.
기존 국회의사당 건물에서 볼 수 있게 될 건물 속에는 수 천개에 이르는 사무실, 상점들이 들어서게 되는데 이 교두 건축은 「라인」강을 따라 넓은 강변 벌판에 건설하기로 계획되어있는 휴식을 위한 공원과 경계를 이루게 되어있다.
이러한 「본」의 수도화를 위한 건실책임은 두 민·자민당의 제2차 연립내각에 새로 마련된 토목 및 도시건설이 맞게 되었다. 서독 정부로서는「본」수도화에 따른 정부청사 건설에 대하여 주어진 재정범위 안에서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고 그렇다고 지나친 소박성이 나타나지 않도록 신중히 진행해야 한다고 기본목표를 설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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