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의 법칙』의『파킨슨』|그의 인간과 사상|「런던·뉴스」지와의 「인터뷰」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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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킨슨」의 법칙』으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영국의 저술가이자 역사 학자「시릴·노드 커트·파킨슨」이 최근「런던·뉴스」지와의「인터뷰」를 통해 그의 인간과 사상을 밝혔다. 「모든」과업은 작업자의 진행 속도 조절로 그에 배당된 시간을 채우게 마련이라는『「파킨슨」의 법칙』은 6개월간「베스트·셀러·리스트」에 올라 50만부 이상이 팔렸다.
금년 63세의 이 땅딸막한 노학자는 영국 해협 가운데 있는 섬「건지」에 살고 있다. 58년에 나온 이 책에서 그는 소시민의「모랄」을 풍자적으로 그렸다.
그는 16세에 화가이며 교사였던 부친「월리엄·에드워드·파킨슨」을 여의고 그의 뒤를 따라 장식 미술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배에 칠을 하는 일을 맡았던 그는 조선 공학, 해군 사에 흥미를 느꼈고, 여기서 그의 문필가로서의 첫 눈을 떴다.
그는「요크」대성당 근처에서 형과 함께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엄격한「카톨릭」신자였고 어머니는 섬세한 음악가였다. 그의 형은 결국 교역자가 됐으나 그는 20세에 불가지론 자로 행세하기 시작했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케임브리지」대에서 사학자「에드워드·웰번」의 제자가 됐다. 그때 그는 해군 사 부문에서 양명할 결심을 했고, 23세에는 이 방면의 3권의 책을 썼으며 이것으로 그는「런던」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됐다.
그의 신조는『경제적 욕망을 버리고 사회적 지위에서 대망을 품으라는 것』이다.「프랜시스·트레이크」경이나「윌리엄·셰익스피어」가 이런 사람이라고 그는 말했다.「케임브리지」대에 해사 학과를 설치하려다 실패하자 38년에 그는「티버튼」대 역사 학과에서 강의를 맡았었다. 2차 대전에서 그는 소령으로 제대했다.
그는 전쟁에서 실전에는 자신이 없었으나 용병, 군대의 조직과 훈련 등에는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이때의 그의 경험은 후일 그를 유명하게 만든 저서의 소재가 됐다.
「말레이」대에서의 8년간의 강의를 마치고 낸 한 권의 책으로 그는 58년 이후 일약 세계적 명사가 됐고 그의 신조가 실천에 옮겨졌다. 『「파킨슨」의 법칙』은 미국에서도 6개월간「베스트·셀러」로 등장했으며 50만 부 이상이 팔렸다.
그의 학설은 영국과 미국의 의회에서 자수 인용되어 질문 아니라 외교정책에 차용되고 있다. 그럼 무엇이 이 책을「베스트·셀러」로 만들었고, 사람들은 갑자기 이 책을 사지 않으면 불안해할 정도로 여기에 끌렸을까?
출판업자들의 의표를 찌른 이 책의 세계적 인기는 많은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 이 책은 많은 양의 정보에 바탕을 두었다.
정보는 함축성 있게 표현하고 있지만, 다른 저술가들의 책에서 보지 못하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책은 어쨌든 처음 읽어도 강한 인상을 받도록 돼 있다. 이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용에 대해 반박하는 것은「유머」감각이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한다. 이것은 저자의 풍속 가로서의 재질이 선공한 「케이스」다. 또 하나 이 책이 성공적 인기를 모은 이유는 궁료 주의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적절하게 지적한 공일 것이다.
「파킨슨」의 이론은 그가 명시한 것처럼 정부 활동에 한해서 성공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경영 활동에서는 비록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는 해도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의 세계적 명성은「말레이」에 있을 때「이코노미스트」지에 발표한 수필이었다 이것은「파킨슨」의 법칙의 토대가 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미래의 행정가를 가리키면서 이광요 등과 만나곤 했던「말레이」에서의 생활을 가장 보람있었던 때로 회상했다. 「파킨슨」의 법칙이 안겨 준 경제적 성공으로 그는 대학 교수 생활을 집어치웠다.
그러나 그가 정말 자부심을 갖은 책은 정치적 관심을 중심으로 진정한 동양과 서양을 다룬「동양과 서양』으로 63년에 나온 책이다. 『「파킨슨」의 법칙』은 방법에 관한 것에 지나지 않으나『동양과 서양』은 본질에 관한 책이라는 것이다. 경영의 문제는 양 문화의 접촉 문제에 비하면 매우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파킨슨」은 자신과 자신의 저서에 관한 약삭빠른「프로모터」다. 미국에서의 그의 책의「베스트·셀러」로서의 위치를 굳히기 위해 뻔질나게 TV에 출연하고 아무리 조건이 불리한 초청 강의에도 응했다. 그는「달았을 때 두 들기라」는 생활 신조를 자신의 책에 관한 한 철저히 지켰으며, 그 효과는 예상대로 나타났다.
그는『「파킨슨」의 법칙』이후 갖가지 종류의 책을 쓰기 시작했다. 65년에는 어린이에 관한『포니스·풀로트』를, 그리고 70년에는 2편의 희곡과『「호레이쇼·혼블라워」의 생애와 시대』를 그리고 금년 봄에는 소설(Devil To Pay)도 출간했다. 창조의 의욕에 불타는 「파킨슨」은 스스로 활동 영역을 좁혀서 어떤 전문가가 되기보다는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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