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탈출 전 홍위병이 폭로한 체험 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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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8년 여름 금문도의 맞은쪽에 있는 해안 도시 하문에서 밤을 이용, 4시간에 걸쳐 1만2천5백m를 형과 함께 헤엄쳐 탈출한 홍위병이었던「캔·링」은 중국 대륙을 휩쓴「문화혁명」의 홍위병 운동의 적나라한 실태와 괴리 한 사건의 내막, 중공 지도층의 모습, 순 진 무구한 청년들이 어떻게 홍위병이라는 명목으로 정치에 이용되었던가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다음은 근착 일본의 월간지 문예 춘추에 실린「겐·링」 의 자숙 전적인 술회를 발췌한 것이다.

<새벽부터 열변 토하고>
나는 중국 본토의 최남단인 복건 성의 가장 남쪽에 있는 하 문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내가 2살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홀어머니 혼자 힘으로 6명의 형제들을 길렀다. 나는 그중 막내로 66년에 16살이었다.
하 문 제팔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나는 갑자기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우선 아침에 잠자리에서 깨는 것부터가 확성기 때문이다. 마당 한복만에 설치된 확성기에서는 새벽 5시만 되면 열변이라도 토하는 듯한 연설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학교에 가면 교실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니고 모두 마당에 모여 이른바『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최근 1개월 동안 신문들은 일부 문학·연극·영화를『독초』라고 규정하고 빗발치듯 비판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소란은 교실에까지도 침투, 선생님들은 모두 활기를 잃고 자포자기의 표정들이었다. 선생님들은 바로 이『독초』들이 좋았었던 것이었다.
64년부터 공작 조가 사회주의 교육운동을 지도하겠다는 명목으로 학교에 들이닥친 것이다.
공작 조의 우두머리는 구 락이라는 사람. 복건 성 체육협회장인 그는 교장보다도 직위가 높고 30명의 공작원을 거느리고 있어 학교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학교를 통째로 흔드는 세력 자가 된 것이다.

<교장도 머리 숙이고>
매일 방과후 공작 조와 교사들은 도서실에서 장막까지 쳐 놓은 채 집회를 계속하였다,
『집의』라는 것은『자기비판』장인 것이다. 교사들은 한 명 씩 자기 죄를 고백하고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면 교장도 아무 말 못하고 머리만 잔뜩 수그려 들이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 9시에 운동장에 모여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주은래 수상·강 청·진백달 등 당 고위층의 연설을 풀어야만 했다.
강 청은 날카로운 목소리로『수정 주의자들을 뿌리째 뽑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제『학교는 폐쇄되었고 학생들은 모두 위대한 사회주의 문화 대혁명』에 참가하여야 된다』는 공작 조의 훈시가 떨어진 것이다.

<노 교사는 졸도 사 까지>
공작 조가 사라진 후 학교 교정에는 머리와 얼굴에「잉크」를 잔뜩 묻힌 40∼50명의 교사들이 나란히 벌을 받는 것처럼 서 있었다. 그들의 목에는『반동적 학술 권위 아무개』,『계급의 적 아무개』,『자본주의의 앞잡이 아무개』등이 쓰여진 팻말이 걸려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곤봉의 세례와 고문까지도 교사에게 가해졌다. 사람의 똥이나 벌레를 강제로 먹게 하고 깨어진 유리 조각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게 하는가 하면 단기「쇼크」도 가할 정도였다. 학생들은 대부분 겁에 질려 머뭇거리고 있었으나『홍오류』(노동자·빈농·해방군 병사·혁명 간부·혁명 열사) 에 속하는 학생들은 대담하게 공작 조가 시키는 대로 그들의 교사를 이렇게 모질게 다루고 있었다.
내가 이런 중에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평소 존경하던 전 선생님이 이들에게 살해된 일이었다.
전 선생은 60세를 넘은 분으로 평소 고혈압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이날 2시간 이상이나 뜨거운 여름 햇볕이 내리쬐는 교정 한복판에 서 있다가 그만 졸도한 것이었다.

<고문으로 절명 일쑤>
그러나 무정한 한패의 학생들은 찬물을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하고, 정신이 들면 다시 모진 고문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러하기 몇 차례, 이제는 완전히 실신하여 깨어날 줄 모르는 전 선생에게 곤봉을 갖다 대어 전 선생의 항문에 쑤셔 넣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인간이 한 인간을 취급하는 방법일까? 전율스러운 생각이 온몸을 엄습하였다.
닭은 한칼에 죽일 수 있으나 사람을 고문으로 죽이는 일은 너무나 처참한 일이다.
인민은 모두 평등하다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이와 같은 일이 도대체 일어난다니 이해할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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