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기업은행장에 권선주 내정 … 국내 첫 여성 행장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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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여성 은행장이 탄생한다. 금융위원회는 23일 신임 기업은행장으로 권선주(57·사진) 부행장을 임명 제청했다. 권 부행장은 대통령 임명을 거쳐 27일로 임기가 끝나는 조준희 현 행장을 잇는 차기 은행장이 된다. 52년 역사를 가진 기업은행은 물론, 국내 시중은행·국책은행을 통틀어 첫 여성 행장이다.

 금융위는 “권 내정자가 최초의 여성 은행장으로서 리스크관리를 통한 은행의 건전성을 제고하고 창조금융을 통한 실물경제의 활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임자로 판단해 신임 기업은행장으로 제청했다”고 밝혔다.

  권 내정자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을 중시하고, 내부적으로도 소통과 창의성이 강조되는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기업은행의 가장 큰 임무는 중소기업 금융”이라며 “성장 사다리펀드, 문화 콘텐트 육성, 지식 대출 등에도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첫 여성 은행장의 의미와 관련해선 “금융은 여성에게도 적합한 산업이며 은행 직원의 절반은 여성”이라며 “각 분야에 여성 인력의 진출이 늘어나는 것은 일종의 시대정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권 행장의 전격 발탁은 청와대 작품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권 부행장은 당초 금융위에서 올린 후보 리스트에는 없었다”면서 “대통령이 결심한 전형적인 발탁 인사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당초 권 부행장은 IBK캐피탈의 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차기 행장 자리를 놓고 조 행장과 관료 출신 간의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고, 이런저런 잡음이 나오면서 ‘참신한 인물’을 찾는 쪽으로 인사구도가 급선회했다는 후문이다.

 아버지와 언니·여동생이 모두 은행원인 집안에서 태어난 권 내정자는 경기여고와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1978년 기업은행에 입행했다. 서울 동대문지점 창구 직원으로 은행 일을 시작한 그는 당시만 해도 남성 직원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외환·여신 업무로 영역을 넓혀갔다. 이후 주요 지점장을 거쳐 외환사업부장, 중부지역본부장을 지냈고, 2011년 기업은행의 첫 여성 부행장이 됐다. 지난해부터는 리스크관리본부장 겸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을 맡아왔다. 지인들은 그를 “겸손하면서도 내공이 강한 인물”로 평가한다. 평소 여성 직장인으로서 ‘유리 천장’을 깨기 위해선 선후배들과 활발하게 소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자기 몫만 지키려 하지 말고 조직을 생각하고, 동료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한편 대표적인 ‘금녀의 영역’이던 금융권 고위직에 올 들어 여성들의 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한국은행에 첫 여성 임원(서영경 부총재보)이 탄생했고, 앞서 5월에도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보)에 시중은행 출신의 오순명 처장이 임명됐다.

조민근·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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