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관음암 목각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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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화는 종이나 깁에 그린 평면적인 그림인 게 상식이다. 그 불화는 5색의 진채를 써서 화려하게 채색하는데 더러는 아청이나 검은 바탕에 금니와 은니로 선묘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불화를 제작하는 사람을 금어라 하고 혹은 화공·화사라고도 하며 으례 승려인 까닭에 화승이라고도 불러왔다. 그 화승들은 불화 제작만이 아니라 건물의 단청과 불상의 개금까지도 모두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탱화 전문의 금어란 지청 대신에 단청장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현재 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돼 있는 세 분의 노화승 역시 단청장의 명목으로 돼 있다.
그러나 탱화 중엔 전혀 이채롭게 목각으로 하여 한 폭 불화를 이룬 경우가 있다. 목정 혹은 목각정이 그것이다. 그런 목정은 전국을 다 꼽아도 모두 4폭. 한결같이 17세기께의 작품으로서 남원 실상사 약사암, 문경 대승사, 상주 남장사 보광전과 관음암에 각각 있다.
그중 상주 관음암의 것은 목각이 뛰어나 한국 미술 2천년 전에 특별 전시하기로 선정돼 있었다.
그런데 관계 승려들의 막무가내로 끝내 전시를 단념하고 말았는데 뒤늦게 출품을 수락해 전시 기간 중인 지난 3일 상주 산중으로부터 서울로 옮겨와 금주부터 공개하게 됐다.
목각의 탱화란 일반의 귀에 선 낱말이거니와 그 소장 사찰들이 모두 깊은 산중에 있으므로 이를 본 사람들도 극히 적다. 학계에조차 근년에야 보고 된 실정이다.
목정은 두터운 판목 몇개를 연접시켜 거기에 불상이며 무늬를 양각한 것이다. 그리고 일반 원각의 목조 불상과 마찬가지로 금니를 입히고 따로 보관과 지물 등의 장식을 금속판으로 만들어 붙였다. 본디 그림과 조각은 별개의 기능에 속하는 것이지만 불가에선 반드시 장인을 구별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순히 각공만으로 목정이 이루어질 수는 없으며 오히려 화사가 참여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관음암 목각정은 남장 사의 그것과 함께 그 산너머 북장사에 모셔 있던 것. 북장사 사적지에 의하면 1694년 (숙종 20년) 소속 암자인 상연암에서 조성한 것인데 언젠가 없어진지 오래고 물건만 현재의 장소로 옮겨진 것이다.
이 목정은 아미타를 주불로 하는 관경만다라이다. 왼쪽에 관음보살, 오른쪽에 세지 보살이 협시로 앉았고 뒤로는 지혜를 다스리는 문수 보살, 덕을 다스리는 보현 보살과 석가의 제자인 가엽·아난존자가 옹위 했다. 그리고 네 귀의 무장은 불계를 수호하는 지국천·증장천· 광목천·다문천의 사천왕이다. 이는 곧 서방 극락 정토의 표현이다.
5쪽 판목의 아래위로 마구리를 대어 모두 7장인데 조각이 튀어나오는 듯 두드러지고 금빛도 아주 휘황하다. 가로 1m95cm, 높이 1m62cm, 두께 13cm, 상주 남장사 관음암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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